과거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 관광객이 가장 불편하게 느꼈던 것이 화장실이었다고 한다. 재래식 화장실이 수세식으로 바뀐 후에도 우리나라 화장실은 그리 좋은 이미지를 갖지 못하였다. 공중 화장실의 경우는 더욱 그러했다.그런데 몇 년 전부터 지방자치단체들의 경쟁적인 노력으로 공중화장실 개선 붐이 불면서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깨끗하고 쾌적한 화장실로 변모하고 있다. 몇 주전 고속도로 휴게실에서 어떤 노인 한 분이 화장실을 이용한 후 다시 한번 화장실을 찬찬히 둘러보며 "이제 정치권만 바뀌면 정말 살기 좋은 나라가 될텐데" 하고 독백하는 것을 들은 적도 있다.
탄핵 정국을 보면서 불현듯 그 노인의 말이 생각나는 것은 어쩐 일인가. 우리사회에서 가장 뒤진 부문을 지적하라면 대다수의 국민들은 주저 없이 정치를 꼽을 것이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사회, 경제, 문화, 스포츠 각 부문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건만 정치인들은 무슨 생각들을 하고 있는지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다. 정치의 진정한 본질을 망각한 채 불나방이 불을 좇듯 맹목적으로 돌진하는 것이 정치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을 둘러싼 여야의 대치를 보노라면 1950, 60년대 제임스 딘 류의 영화를 관람하고 있는 느낌이다. 흔히들 치킨 게임이라 일컫는 겁쟁이 게임의 하이라이트는 영화 종반부에 두 명의 경쟁자가 서로 자동차를 몰고 마주보고 돌진하든지, 절벽을 향해 나란히 질주하는 장면이다. 부딪히는 것이 두려워 핸들을 돌리거나, 절벽을 향해 달리다 멈칫하는 경우 그는 패배자가 되어 퇴장하는 것이다. 물론 승자는 그 옆에서 기다리고 있던 멋진 여인과 차를 타고 사라지게 된다.
현재의 탄핵 정국은 수십 년 전의 정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마주 달리는 자동차를 운전하는 정치인들은 그들의 행동이 얼마나 무모하고 위험한 일인지 모르고 있다. 관객인 국민들이 그 게임을 즐기고 있다고 오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나라 국민들의 영화 관람 수준을 우습게 알고 있는 것 같아 불쾌하기 짝이 없다.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에 박수를 보내고 있는 국민들인데 아직도 치킨게임 정도로 관객을 모을 수 있다는 발상부터 바꿔야 한다.
정치의 본질은 타협이다. 사회의 여러 갈등을 풀기 위해 숙고하고, 대화하고, 토론하고, 타협하는 것이 정치다. 도저히 풀리지 않을 것 같은 얽힌 실타래를 한올 한올씩 풀어가는 것이 정치이기에 정치를 지고의 예술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러나 현 우리나라의 정치를 보고 있으면 예술은커녕 저질 영화에도 못 미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4월 총선에서 좀 더 많은 의석을 차지하는 것 외에는 보이는 것이 없는 것 같다.
사전 선거운동은 아니었다 할지라도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지적한 선거관리의 불공정 문제는 노 대통령이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마땅하다. 대통령의 정치활동 범주에 대한 논의는 그 후에 해도 늦지 않다. 어제 특별기자회견에서도 선관위의 지적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는 자세보다는 그 지적을 납득할 수 없다는 마음을 강하게 내보여 정말 답답하다. 사과를 패배로 타협을 굴종으로 인식해선 안 된다.
야권 역시 탄핵이라는 카드를 그렇게 쉽게 빼어 들만큼 다급했는지 자성해야 한다. 민생과 국가경제 그리고 국가 위신도 생각하는 여유를 찾아야 한다. 총선에 그렇게도 자신이 없단 말인가.
하루쯤 냉각기를 갖고 노 대통령과 여야 정치인, 국회의원 모두 버스를 함께 타고 고속도로 휴게실의 화장실을 둘러보고 천만 관객을 넘어선 '실미도' 나 '태극기 휘날리며'를 단체 관람할 것을 간곡하게 권한다. 그 정도 비용은 비록 적은 교수 월급이지만 선뜻 내놓을 마음도 있다. 탄핵정국의 파국을 막을 수만 있다면.
이 정 희 한국외국어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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