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종합선물세트'식의 신용불량자 대책을 발표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던 정부가 입장을 바꿔 10일 종합대책을 전격 발표했다. 이번 대책으로 연내에 다중 채무 신용불량자 70만명을 포함해 총 100만명 정도가 구제돼 금융불안이 상당부분 해소될 전망이다.정부 대책은 신용불량자 확산을 막아야 가시적인 경기회복이 가능하다는 판단에서 나온 것으로, 채무자가 정상적인 생활을 회복하도록 지원해주되 도덕적 해이를 최소화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나 이번 대책은 금융불안의 근본적인 치유가 아니라 부실을 지연시키거나 '숫자 줄이기'에 그칠 가능성이 높고,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할 금융기관들도 반신반의하는 분위기여서 실효를 거두기 힘들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특히 정부가 '탄핵 정국'의 소용돌이 속에 갑작스럽게 신용불량자 구제대책을 내놓아 '물타기 카드'이거나 총선을 앞둔 선심성 정책이라는 비난도 쏟아지고 있다.
이번 대책의 핵심은 2개 이상 금융기관에 빚을 진 다중채무자의 연체채권을 장기저리 대출로 전환해주는 배드뱅크의 설립. 연체기간 3∼6개월, 연체금 5,000만원 미만 다중채무자를 대상으로 3개월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하반기부터 본격 가동될 전망이다.
다중채무를 떼어내 한곳에 모으면 개별 금융기관들의 부실채권 부담이 크게 줄어들기 때문에 금융시장 불안요인도 상당부분 제거되고, 대신 연체된 빚은 시간을 두고 천천히 회수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단돈 몇 만원도 구하기 힘든 다중채무 신용불량자가 원금의 3% 선납을 조건으로 하는 배드뱅크를 얼마나 이용할지, 또 지난 1년여동안 신용회복위원회의 개인워크아웃 프로그램을 외면했던 채무자가 선뜻 배드뱅크로 찾아올지는 의문이다.
삼성경제연구소 전효찬 수석연구원은 "배드뱅크로 대출을 일으켜 부실을 더 큰 부실로 만들겠다는 것"이라며 "이곳에 부실이 발생하면 결국 또 국민부담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대출을 위한 '종잣돈'으로 자산관리공사가 배드뱅크에 대여해 줄 5,000억원마저 부실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일단 원금의 3%만 내면 신용불량자 등록이 해제되는 배드뱅크 특성상 도덕적 해이 유발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재정경제부 김석동 금융정책국장은 "배드뱅크를 통해 2∼3년간 빚을 잘 갚으면 원리금을 깎아주거나 이자를 낮춰줄 수 있다"며 "대신 성실히 갚지 않으면 바로 채권추심에 들어가고 크레딧뷰로(CB, 신용정보업자)에 기록이 남아 더 큰 불이익을 받게 된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일단 신용불량자 딱지를 떼게 되면 신규 대출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에 또 다른 부실로 이어지거나 도덕적 해이가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
대책의 성패를 좌우할 시중은행의 반응도 싸늘하다. 조흥은행 백태석 신용관리부장은 "단일 금융기관 등록 신용불량자에 대해 결국 상환유예 쪽으로만 방향을 잡은 것 같은데 채무상환을 연장해서 풀릴 문제가 아니다"며 "은행 입장에서 또 연체가 될 것이 분명한데, 과연 이게 대책인가 싶다"고 비판했다.
/남대희기자 dhnam@hk.co.kr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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