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97>머위 꽃의 고민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97>머위 꽃의 고민

입력
2004.03.11 00:00
0 0

이른 봄 양지바른 논 둑에도, 도랑물이 흐르는 숲 가장자리에도 머위 꽃이 핍니다. 봄 산행을 떠났다가 숲 속에 봄이 오는 속도가 너무 느려 변변한 봄 꽃 구경 한 번 못하고 되돌아오는 섭섭한 길목에서 만나는 꽃이라 더욱 반갑곤 합니다. 왜 흰빛이 많이 섞인 듯한 은은한 연두빛 때깔도 아주 곱지 않습니까.머위? 머웃대말인가? 이런 생각을 하고 계시다면 맞습니다. 봄에 꽃이 먼저 피고 그 다음 잎이 피어나면 잎자루를 잘라, 데쳐 나물로 먹습니다. 쌉싸름한 맛이 들어 입맛을 돋우는 데 좋습니다. 들깨를 갈아 무치면 별미이기도 하지요. 머위의 꽃과 잎과 나물을 함께 연결하여 생각하실 수 있는 정도라면 식물을 많이 아는 분이십니다. 서로서로 생김새가 달라 같은 식물로 연관 짓기가 좀 어려우니까요.

먼저 올라오는 포기는 꽃을 달고 있습니다. 머위는 국화과에 속하는 진화된 식물인 만큼 작은 꽃들이 모여 두상화서(頭狀花序)를 이룹니다. 머위는 여기에 다시 또 한번의 변화를 모색하는데 바로 이러한 두상화서가 다시 모여 더 큰(크다고 해도 2중 두상화서의 지름이 10cm도 안되지만요) 꽃차례를 만든 다는 점입니다. 말하자면 하나의 큰 대도시를 만들기보다는 작은 위성도시를 여러 개 만들어 전체적으로 큰 모습을 갖추는 보다 기능적인 구조라고 해야 할까요.

머위 꽃의 남다른 노력은 이뿐이 아닙니다. 언뜻 보면 비슷하지만 암꽃들이 모인 암그루와 수그루가 서로 달리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좀 둥글고 약간 노란빛이 도는 것이 보통 수그루이며, 흰빛이 많이 도는 꽃이 달리고 가늘고 긴 것이 암그루입니다. 왜 암수그루가 다르냐. 당연히 근친교배의 가능성을 줄이기 위함입니다.

수그루에는 수꽃들이 가득 달려 있습니다. 통상화(筒狀花)의 모습이 마치 작은 별처럼 보이고 수술 끝에는 꽃가루가 달립니다. 곤충들은 이 수꽃을 찾아가 꽃가루를 묻히지요. 그런데 고민은 여기에서 시작됩니다. 아무것도 줄 것이 없는 암그루는 꽃가루를 달고 올 곤충들의 도움이 꼭 필요한데도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만든 대안은 암그루의 암꽃 사이에 수꽃을 함께 피게 하는 것입니다. 꿀까지 분비해 곤충들에게는 매력 넘치는 수꽃이지만 실제로는 수꽃의 기능을 전혀 할 수 없는 무늬만 수꽃인 셈입니다.

사람들의 삶에도 겉과 속이 다른 광대 같은 인생이 많지만, 암그루에 달린 들러리 가짜 수꽃들의 삶도 만만치 않습니다. 잘 살아가기 위한 머위의 고민이 얼마나 많았으면 이런 모습이 나타나게 된 것일까요. 사람도 식물도 잘 사는 일이 쉽지만은 않은 듯합니다.

이 유 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