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과연 IT(정보기술)강국인가. 1,000만명이 넘는 초고속인터넷 사용자와 높은 컴퓨터 보급률, 전국에 깔린 PC방, 전 국민의 필수품이 된 휴대폰 보급상황 등을 보면 분명 IT강국이다. 금융, 쇼핑, 정부민원 등 인터넷을 이용한 다양한 서비스도 일반화하고 있다. 선진국 기업들이 휴대폰이나 소프트웨어 신제품을 개발하면 한국시장에 먼저 선보여 반응을 살필 정도다. 그러나 IT의 핵심인 운영체계, 각종 표준, 서버 등 IT인프라 분야에는 우리나라가 명함도 못 내민다고 한다. 정확히 말하면 IT관련 네트워크와 일부 제품은 강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IT강국과는 거리가 있다는 얘기다.■ 100년만에 내린 3월 폭설로 빚어진 사상초유의 고속도로 마비사태는 전형적인 후진국형 재난이다. 뒤늦은 대설경보, 고속도로 마비의 빌미가 된 교통사고 처리 미숙, 이후 벌어진 사태에 대한 안이한 상황판단과 늑장 대응, 그리고 임시방편식 수습은 IT강국의 모습이 아니다. 전국 주요도로의 상황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시스템과 고속도로 관리자와 이용자 모두가 유·무선 통신장비를 갖춘 상황에서 1만여대에 달하는 차량과 수만명의 시민이 고속도로에 갇혔다는 것은 IT강국의 치욕이 아닐 수 없다.
■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다양한 분석이 가능하겠지만 소프트웨어가 하드웨어를 못 따라주어 생긴 현상으로 보는 것이 정확할 것 같다. 거미줄 같은 통신망, 폐쇄회로TV 화면으로 무장한 중앙통제시스템 등 하드웨어는 훌륭한데 이 하드웨어를 제대로 작동시키는 소프트웨어, 즉 사람에 문제가 있었다는 뜻이다. 현장과 중앙통제실과의 정보전달 실패나 신속한 대응조치를 내려야 할 컨트롤타워의 무능력, 무감각을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시설만 첨단 디지털로 바뀌었지 사람은 아날로그시대에 머물러 있음을 보여주었다.
■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비난을 듣더라도 고칠 것은 확실히 고쳐야 한다. 감사원이 행정자치부, 건설교통부, 한국도로공사 등을 대상으로 정부의 방재시스템 가동 및 대응상황 조사에 들어갔다. 건교부도 부랴부랴 재난체계구축 기획단을 설치, 고속도로 재해대응 매뉴얼을 만들고 유관기관과의 연계체계도 재정립키로 했다고 한다. 아무리 좋은 시스템, 매뉴얼을 갖추어도 이를 가동하는 사람이 변하지 않으면 달라질 것이 없다. 사람이 달라지지 않는 한 우리나라는 결코 IT강국이 될 수 없다. 정부의 의지가 흔적 없이 사라진 눈처럼 흐지부지 되지 않길 기대한다.
/방민준 논설위원 mjb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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