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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각]섞인 것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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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각]섞인 것이 아름답다

입력
2004.03.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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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SBS가 내보낸 '외국인 대설전! 한국인은 왜?'라는 프로에서는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외국인 80명이 나와 그들의 눈에 비친 한국 사회의 이모저모를 짚었다. 처음 거론된 것은 한국인들이 내면화하고 있는 '인종의 위계'였다. 토론의 실마리를 마련하기 위해 제작진이 택시 잡기와 이성 교제를 소재로 시행한 시뮬레이션에서, 한국인이 흑인들에게는 차갑고 백인들에게는 비교적 너그럽다는 것이 새삼 확인되었다.시뮬레이션의 결과로 한국인의 인종주의를 일반화해서는 안 되겠지만, 평균적 한국인이 인종적 편견에서 그리 자유롭지 않고 그 인종주의가 유색인들에게 더 공격적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외국인 출연자들은 한국어가 사뭇 유창했고, 그 유창함을 부분적으로 설명하듯 그들 가운데 일부는 한국인을 배우자로 두고 있었다. 그러니까 출연자 가운데 일부는 혼혈 자녀를 한국에서 키우고 있을 터였다. 서울의 경우 외국인이 주민 집단의 1%에 이른다고 하고 다른 지역에도 외국인 거주자가 늘어나는 추세인 만큼, 한국인과 외국인 사이의 결혼도 점차 늘어날 것이다. 그리고 그 2세들 상당수는 한국에서 자라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 아이들이 자라날 한국 사회는 어떤 사회인가? 순혈에 대한 열망은 어느 사회에서나 더러 발견되지만, 한국에서 그것은 거의 병적 집착의 수준에 다다라 있다. 이주 노동자에 대한 배척도 단지 사회경제적 이해관계의 엇갈림만이 아니라 섞임과 스밈을 두려워하는 문화심리적 순혈주의에 상당 부분 떠밀리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그 순혈주의를 정면으로 거스른 혼혈인들은 한국 사회 인종 사다리의 맨 아래에 깔려 있다. 실상 한국은 혼혈아들이 정상적으로 자라나기가 불가능한 매우 드문 사회 가운데 하나다. 한국인 배우자와의 사이에 자식을 두고 있는 SBS 출연자들도 아이와 관련해서 이미 좌절감을 맛보았거나 이내 맛볼 것이다.

그러나 그들만 해도 대개 중산층에 속한 사람들일 것이다. 한국 경제의 한 귀퉁이를 떠받치고 있는 이주 노동자들이 한국인 배우자와의 사이에 둔 아이들 대부분은 방송의 문화 프로그램에 토론자로 얼굴을 내밀 수 있을 만큼 형편 좋은 부모를 만나기 어려울 것이다. 그들은 대체로 가난할 것이고, 그런 가난에 대한 사회경제적 편견은 순혈주의에 바탕을 둔 인종적 편견과 어우러져 그들의 삶을 정녕 힘들게 만들 것이다.

그것은 해방 이후 미군이 한반도에 주둔하면서 생기기 시작한 혼혈인들의 처지를 보아도 또렷하다. 그들은 가난만이 아니라 따돌림으로 학교를 거의 마치지 못했고, 일자리를 구할 수 없었고, 결국 제도권 바깥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혼혈인들의 인권 상황을 살펴온 박경태씨의 추산('당대비평' 봄호)에 따르면 미군과 한국인 여성 사이에 태어난 혼혈인은 3만∼5만에 이르지만, 그 가운데 현재 한국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500여 명에 지나지 않는다. 정부가 이들의 삶을 북돋우는 정책을 펴기는커녕 해외 입양을 비롯한 국외 이주 정책을 통해 혼혈인들을 한국 사회에서 솎아내는 쪽을 택했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비판 받아야 할 것은 정부만이 아니다. 정작 비판 받아야 할 것은 정부로 하여금 궁극적 분리 정책을 고를 수밖에 없도록 한 한국인 일반의 순혈주의일 것이다. 그 순혈주의는 나와 다르다고 판단된 것에 대한 두려움과 미움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리고 그 두려움과 미움의 시선은 모든 '잡스러움'을 말끔히 씻어내려는 덧없는 욕망으로 이글거린다.

그러나 섞임과 스밈은 문화적·생물학적 진화의 피할 수 없는 요건이다. '순수한 한국인'이라는 것 역시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허깨비다. 설령 그런 것이 존재한다고 할지라도, '순수한 한국인'만으로 이뤄진 사회는 흉측하기 짝이 없는 전체주의 사회일 것이다. 아름다움은 섞임 속에, '잡스러움' 속에 있다.

고 종 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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