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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방송 지금/다큐영화 "폼페이…"에 佛 800만명 전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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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방송 지금/다큐영화 "폼페이…"에 佛 800만명 전율

입력
2004.03.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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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커먼 구름이 하늘을 덮고 베수비오가 돌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고요하던 나폴리만도 요동을 친다. 떠나야 하는가, 남아야 하는가. 서기 79년 8월 24일, 폼페이 주민들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공포에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프랑스 공영채널 France2가 지난달 22일 방송한 '폼페이 최후의 날'의 첫 화면은 이 비극의 첫 순간을 생생히 그려내고 있다.'폼페이 최후의 날'은 France2와 영국 BBC, 미국 디스커버리 채널이 공동제작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이미 영국에서 방송돼 커다란 반향을 일으킨 이 대작은 프랑스에서도 870만 명이 넘는 시청자(시청점유율 32.5%)를 매혹시켰고, 방송 후에도 두고두고 화제가 되고 있다. 일요일 저녁, 그것도 경쟁 채널에서 아놀드 슈워제네거의 영화를 방영하는 가운데 시청자 3명 중 1명이 이 작품을 선택했다. 무엇이 프랑스인들을 이처럼 매혹시켰을까.

화산재에 덮인 채 그대로 굳어버린 폼페이 시신의 잿빛 얼굴에는 어떤 조각품도 흉내낼 수 없는 혼돈과 공포가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유적에서 발굴된 뱀 형상의 금팔찌, 검투사의 투구 등도 미완의 진실을 증언한다. '폼페이…'이 그리는 허구는 바로 이같은 진실에서 출발한다. "주인님, 일어나셔야죠"라며 귀족을 흔드는 여자노예의 팔에 감긴 뱀 형상의 금팔찌나 유독가스에 헐떡이던 검투사가 숨질 때까지 손에 쥐고 있던 투구는 허구의 인물과 실제의 사물을 연결하는 고리가 된다. 마찬가지로, 난리 틈새에 금화를 훔치는 평민은 금화주머니를 부둥켜안은 채 석화한 시신으로, 공포에 질린 임신부의 모습은 귀족의 저택에서 발견된 임신 7개월째의 해골로 연결돼 폼페이 시민의 마지막을 상상하게 한다.

"물의 비등점보다 5배나 높은 온도의 화산재가 바닷가로 피신한 시민들을 삽시간에 덮치고, 형언할 수 없는 열기가 집안에 남은 주민들을 압박합니다." 내레이터의 긴장된 목소리와 함께 화면은 비명을 지르는 허구의 인물들과 이와 뼈가 파열된 해골, 화산재에 덮인 시신들을 겹쳐 보여준다. "24시간도 채 안 되는 동안 폼페이는 폐허로 변해갔습니다." 클로즈업으로 처리된 화면에는 통통한 어린아이가 눈을 가리고 엎드려 있다. 곱슬머리와 옷자락의 주름까지 생생한 잿빛 시신, 그 위로 푸르게 자라난 초목들….

다큐멘터리의 철저한 고증에다 다큐만으로는 전할 수 없는 감동과 재미를 얹은 다큐 영화는 역사물을 다루는데 더없이 좋은 장르로 꼽힌다. 실제로 '폼페이…'은 인류 최대의 참사 중 하나인 베수비오 분화를 세밀히 검증하고, 당시 로마 사회의 다양한 구성원들이 겪은 비극의 실상을 흥미롭게 풀어나갔다. 폼페이 참사를 서술한 서한문에서 플리니우스는 "내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라고 적었다. 하지만 2000년 후 시청자들은 그것을 '보았고' '믿었을' 뿐 아니라 이해할 수 있었다.

/오소영·프랑스 그르노블3대학 커뮤니케이션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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