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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띄우는 편지

입력
2004.03.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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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 도시들이 그렇듯 호주 멜버른은 참 깨끗했습니다. 이른 아침 풍경은 더욱 그랬습니다. 거리는 막 한바탕 소나기가 지나간 뒤의 청량함과 싱그러움으로 가득했습니다. 궁금해졌습니다. 무엇이 그토록 도시를 정갈하게 만들었을까.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이렇습니다.첫번째는 '도시의 허파'인 숲입니다. 멜버른 도심 한복판의 주인은 고층 건물이 아니라 공원입니다. 쿡 선장의 오두막으로 유명한 피츠로이부터 칼턴, 플래그스태프 등 수많은 공원에서 불어오는 상쾌한 녹색바람이 온 도시를 휘감습니다.

푸른 공원숲을 한가로이 거닐다 문득 서울이 생각났습니다. 나무보다 사람이 더 많다는 농담이 일상화할 정도로 서울의 공원은 열악합니다. 미군이 차지하던 용산 넓은 땅이 곧 우리에게 되돌아오고, 그 땅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지 벌써부터 말이 많습니다. 간단히 말해 공원이냐 아파트냐인데 사뭇 그 결론이 궁금해지면서 한편 불안하기도 합니다. 헐벗은 도시, 앙상한 아파트는 아무래도 정이 안 갑니다.

'도시의 얼굴'인 간판이 두번째입니다. 잘 계획된 도시인 멜버른의 간판은 건물은 물론 다른 간판들과도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혼자 튀려고 알록달록 현란한 색깔을 입히거나 위압감이 들 정도로 큼직큼직한 글씨도 없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살리는 윈윈게임입니다. 거리를 점령하는 흉물 같은 입간판도 없었습니다.

서울 거리의 간판을 생각해봅니다. 멜버른이 화장기 없는 풋풋하고 세련된 소녀의 얼굴이라면 서울은 '얼짱 중독'에 빠져 덕지덕지 두껍고 요란한 화장을 한, 철없는 소녀입니다. 건물과의 멋진 조화는커녕 '더 크게 더 화려하게'를 외치며 건물과 또 다른 간판들과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입니다. 서울의 거리가 볼품없이 요란한 간판으로 시름시름 몸살을 앓아 온 건 오래된 일입니다.

물론 알고 있습니다. 내집 마련 꿈을 위해 묵묵히 일하는 서민들에겐 공원이 사치일 수도 있습니다. 하루하루 힘들게 살아가는 가게 주인들에게 간판은 목숨보다 더 소중한 마케팅 수단일 것입니다. 그렇다고 좋은 게 좋은 거라며 무책임하게 '대한민국의 얼굴' 서울을 이렇게 내버려 둘 순 없습니다.

/김일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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