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곳에서 영화평과 기사를 쓰기 때문에 한국의 각종 스포츠 연예 전문일간지를 읽는다. 그런데 오래 전부터 이들 신문이 쓰는 미국영화와 할리우드 소식, 미국시장에 진출하려는 한국영화에 관한 기사들을 읽으면서 대경실색하거나 실소를 금치 못한 경우가 많다.최근의 예가 지난 3일 끝난 LA의 아메리칸 필름마켓(AFM)에 출품된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수출용 제목은 '태극기')의 경우다. 한국에서 서로 어깨를 나란히 하며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는 두 영화를 보기 위해 마켓에 참석했다.
먼저 '태극기'를 상영하는 극장엘 찾아갔다. 내가 AFM서 본 홍콩이나 일본영화 보다 관객이 훨씬 많은 것은 사실이었다. 좌석의 3분의 2이상이 찼지만, 그러나 만원은 아니었다. 수준급 영화지만 스필버그의 '라이언 일병 구출작전'과 너무 비슷했고, 개인 대 개인 또는 집단간의 폭력이 과다했다. 이어 '실미도'를 봤다. 액션영화로서는 연기와 인물 묘사가 좋고 구성이 튼튼했다. 이 영화도 관객이 많았지만 그러나 역시 만원은 아니었다.
그런데 다음날, 나는 한국의 스포츠지에 난 두 영화에 관한 기사를 읽고 참으로 한심하다는 생각을 금치 못했다. 글을 쓴 기자는 영화의 배급사측이 이 곳서 전해 주는 말을 그대로 옮긴 것 같았다. "두 영화가 상영된 극장은 빈 좌석이 없었고, 계단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은 사람은 그나마 행운아. 선 채로 3시간 가까운 상영시간을 견뎌내야 하는 관객도 상당수에 다다랐다"고 썼다. " '태극기 휘날리며'의 공식 시사장은 눈물 바다"라고 쓰기도 했다. 내 앞에 앉은 한 중년의 동양남자가 눈물을 닦는 것은 봤지만, 눈물 바다는 아니었다.
얼마 전 또 어느 신문은 '태극기'가 벌써부터 내년도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후보로 추천될지도 모른다고 흥분했다. 이 영화가 내년도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오르려면 우선 한국에서 자국대표작으로 선정해 아카데미측에 제출해야 한다. 그것은 미국내 수입사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일이다. 그리고 외국어영화상 후보작 제출시기는 매년 하반기이다.
'태극기'의 제작사측은 영화가 팔리기도 전부터 "메이저들이 서로들 군침을 흘리고 있다"면서 "미국내 100∼200여 스크린에서 상영되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라고 말한 것으로 전했다.
그러나 콜럼비아 자금이 들어간 '와호장룡'을 제외하고 외국어영화가 미국내 100여 스크린에서 상영된 경우는 전무하다시피 하다. 전미 대도시 수십 개 스크린서만 상영돼도 큰 경사다. 한국의 스포츠 연예 전문지가 미국의 엔콰이어러나 글로브처럼 점점 황색지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독자들은 비록 말이 없지만, 사실과 과장, 허위를 구분할 줄 안다는 것을 깨달았으면 좋겠다.
/LA미주본사편집위원·LA영화비평가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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