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공주의자였던 아버지께서는 이 영화를 매우 불쾌하게 생각하셨을 것이고, 장기수 선생님들도 썩 유쾌하게 생각하지는 않으셨을 것이다'. 비전향장기수를 그린 다큐멘터리 '송환'은 프롤로그에서 밝혔듯, 어느 편에서 보아도 편치 않다. 영화는 비전향 장기수들에 대한 우리의 왜곡된 시선을 비판하면서도, 그들을 대단한 의지의 소유자들로 그리지 않는다. 그저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 자신의 이념 때문에 평생 자유를 박탈당한 '사람들'로 그리고 있다.1992년 3월 아산요양원에서 조창손 김석형 두 비전향 장기수에게 교통편을 제공하면서 시작된 김동원(49·사진)감독의 다큐 여정은 그들을 '대단히 고집스러운 사람'으로 여겼던 일반적인 시각에서 시작해, 차츰 그들 곁으로 다가서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마음 속 깊이까지 도달하지도 못한다. 친밀함과 거리감을 다큐의 긴장을 높이며 끊임없이 주목하게 만든다.
"모진 고문과 탄압 속에서 비전향 장기수를 존재케 한 것은 폭압적인 전향 정책"이라는 대목은 남과 북 어느 쪽에서도 반발을 살 만하다. 군사정권의 폭력적인 전향 정책을 비판하면서 동시에 장기수들을 이념의 전사, 이념적 영웅의 위치로 끌어 올리지도 않기 때문이다.
노환을 앓고 있는 어머니를 찾은 김선명씨의 사연은 우리사회가 여전히 이념투쟁의 깊은 후유증을 앓고 있음을 보여준다. "어머니 제 얼굴 보이세요?" "어두워서 안보여. 그런데 집에 혼자 있으면 니 얼굴이 보여. 환하게 보여" 그렇게 말씀한 90세가 넘은 어머니는 아들을 만난 한달 후 영면했으나, 가족들은 산소 위치조차 알려주지 않았다. 그들에게 '빨갱이' 가족은 그들 인생에 너무나 가혹한 형벌을 내렸기 때문이다. 다른 장기수의 가족은 말한다. "지금이야 세상이 좋아졌으니, (장기수들이) 이렇게 돌아다녀도, 언제 어떻게 될지 누가 아느냐." 그들은 또 다시 연좌제의 고통이 시작될 것이 두려운 것이다.
'장기수'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남과 북의 정권과 언론, 2000년 9월 송환을 앞두고 결혼을 선언한 안학섭씨의 생각을 반대하는 '동지'와의 갈등, 김 감독에 대한 당국의 수사, 평생 굴하지 않던 아들이 노모 앞에서 "잘못했다"고 비는 모습 등 이 다큐 한 편에는 장기수의 속마음과 생활, 그들을 둘러싼 정치적 갈등이 고스란히 담겨졌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영화의 제작기간은 12년, 촬영만 800시간. 김동원 감독은 이방인처럼 느껴졌던 그들을 만나면서 느낀 심정을 아주 솔직한 내레이션을 통해 털어 놓으며, 그들을 '이념의 괴물'에서 '고향을 그리는 노인'의 모습으로 위치 시킨다. 한국영화로는 처음으로 올해 선댄스 영화제에서 '표현의 자유상'을 수상했고, 일본 야마가타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등 각종 영화제에 초청됐다. 마이클 무어의 다큐보다 덜 발랄하지만, 그보다 더 진심이 느껴진다.
'송환'의 개봉 전략은 우리나라 독립 영화의 새로운 생존 방식의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전국예술영과관 협의체인 아트플러스가 올 첫 배급작품으로 선정, 19일부터 서울 아트큐브, 하이퍼텍나다, 광주 광주극장, 부산 DMC, 제주 프리머스에서 최소 2주간 상영하고 이후 아트플러스 소속의 다른 극장에서도 개봉할 예정이다.
/박은주기자 ju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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