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오전 8시 인천 남구 학익동. 공장 굴뚝에서 내뿜는 연기를 헤치며 악취가 코를 찌르는 개천을 따라 길을 걷다 보면 공터에 한창 공사중인 5층짜리 건물을 만난다. 한 켠에는 벽돌과 시멘트 철제 빔 등 건축자재가 잔뜩 쌓여있고 모래와 흙 등을 가득 실은 덤프트럭과 레미콘 차량들이 분주히 오가고 있다. 건물 내부에도 여기저기서 망치를 두드리거나 드릴 등으로 구멍을 뚫는 소리가 귀청을 울린다. 전쟁터 같은 이곳은 고층건물 신축현장도 아니고 아파트 재개발현장도 아니다. 432명의 1학년 학생들이 실제 수업을 받고 있는 인주중의 모습이다."전쟁터에서 수업중"
지난 3일 개교한 인주중은 교문과 담장이 아직 만들어 지지 않아 학생들이 개천가 옆 임시 다리를 건너야 안으로 들어선다. 곳곳에 놓여진 건물 자재와 매연을 내뿜으며 달리는 공사 차량 들을 피해 곡예보행을 해야 건물 내부로 들어갈 수 있다. 교실에 들어가 자리에 앉아도 공사 소음은 계속된다.
교사가 수업을 시작하자마자 벽에 구멍을 내는 듯한 소리가 반복적으로 들려온다. 교사 목소리는 이내 공사 소음 속에 묻힌다. 정상적인 수업진행이 아예 불가능하다. 본관 건물의 12개 교실은 칠판과 책·걸상을 갖추고 수업을 하지만 진동하는 페인트와 본드 냄새 등 이른바 '새집증후군'도 심각한 수준이다. 그나마 교실은 좀 나은 상태다. 교무실은 책상 4개만 덩그러니 놓여 있어 20명의 교사들은 쉬는 시간에도 서 있어야 한다. 미술 음악 컴퓨터 등의 기자재실은 텅 비어있는 창고나 다름없다.
옆 건물인 강당은 철제 골조만 올라가 있고 외벽 공사도 채 끝나지 않았다. 공사 인부들이 포크레인을 동원해 부지런히 작업을 진행중이다. '입학을 축하합니다'란 플래카드가 없으면 도저히 학교라고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이 학교 1학년 H(13)군은 "공사 소음이 심해 창문을 모두 닫고 선생님이 목청을 한껏 높여야 간신히 들리는 정도"라며 "교실 수업도 억지로 진행되는데 다른 기자재를 이용한 수업은 아예 꿈도 꾸지 않고 있다"고 토로했다.
인천 공항 신도시에 위치한 삼목초등학교도 상황은 비슷하다. 전입인구가 갑자기 늘어나자 지난해 6월 부랴부랴 착공했지만 완공이 늦어져 지난 5일 인근 공항초등학교에서 입학식을 치르는 '셋방신세'를 져야 했다. 신설된 3개동의 학교 건물의 경우 교실에 책·걸상만 있고 교무실은 아예 비어있다. 교문에서 본관 건물까지의 통행로도 공사 중이고 골조만 서있는 체육관과 내부공사중인 식당의 경우 완공은 머나먼 이야기이다.
미술실 음악실 과학실 등 각종 특기수업을 위한 교실 등은 책·걸상도 갖춰지지 않아 실기수업은 파행적으로 이뤄질 수 밖에 없다.
이번 주 중 새 학교 건물로 간다지만 학생과 학부모들은 걱정이 태산이다. 나이 어린 초등학생들의 안전사고 우려 때문이다. 608명의 신입·전입생들은 공사가 끝나는 올 여름까지는 인주중 학생들처럼 '공사판과의 전쟁'을 치르며 학업을 지속해야 한다.
K(8)양의 어머니 김모(34)씨는 "강남 8학군 같은 환경을 바라는 건 아니지만 최소한 학생들이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은 만든 다음에 학교를 개교하는 게 순서"라며 "교육 당국의 안일한 대응으로 수업권만 침해받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사중인 인주중 등 해당 학교측은 "되도록 소음을 최소화하기 위해 망치질이나 드릴 작업 등은 오후 늦게 하려고 하지만 작업 공정상 어쩔 수 없을 때가 많다"며 "공사를 빨리 끝내는 게 최선의 방법인 것 같다"고 애로사항을 털어 놓았다.
아침엔 초등 오후엔 고교 운동장
인주중과 삼목초등학교와 같이 이번 학기 건물공사가 채 끝나지도 않은 상태에서 문을 연 학교는 전국적으로 11곳이며, 이중 10개교가 인천·경기 등 서울 인근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이 지역들은 신도시나 대단위 아파트 개발에 따라 학생수가 급격히 불어나면서 신규 학교를 필요로 하고 있다. 하지만 교육 당국의 늑장대응으로 학생들은 '공사판 학교'를 다녀야 하는 불편을 감수하고 있다.
그나마 공사판 학교를 다니는 학생의 경우 "조금만 참으면 건물이 완공돼 새로운 시설에서 자유롭게 공부할 수 있다"는 희망이라도 있지만 공사가 늦어져 학교 이전에 대한 기약이 없는 학교들도 상당수다. 이들 학교 학생들은 다른 학교에서 '더부살이'를 하고 있으나 기존의 학생들과 옮겨야 하는 학생들 양쪽 모두 비좁은 공간에서 함께 수업을 받는 최악의 상황 속에서 어려움이 크다.
경기 이천 효양고 1학년 6개반 210명은 현재 인근 아미초등학교 4층에 임시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학교가 1차 준공되는 6월까지 수업을 받을만한 곳이 없어 체면을 접고 초등학교 교실을 빌어 쓰고 있다. 당초 내년 개교 예정이었지만 주민들이 먼 곳으로 학생들을 통학시킬 수 없다며 개교를 앞당겨 달라고 해 타 학교에서 문을 열어야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미초등학교 학부형들이 학생 생활지도를 이유로 고교와 더부살이를 할 수 없다고 강력 항의하고 나섰고, 결국 효양고 학생들은 1∼3층까지 초등학교와 통하는 문을 모두 막아놓은 채 건물 뒷편 현관으로만 출입하고 있다. 운동장도 아침에는 초등학교, 오후에는 고교로 사용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다.
교사들은 입학 첫날 '초등학생과의 접촉 절대 금지'라는 엄명을 내렸다고 한다. 이쯤되면 학교 생활이라고 보기도 힘들다.
효양고 1년 S(17)양은 "초등학생 학부모들의 심정은 이해는 가지만 우리를 비행청소년 취급하는 것 같아 꺼림칙하다"며 "공사중인 학교라도 우리만의 학교로 빨리 이전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교육인적자원부 관계자는 "교육 수요를 예측해 예산을 편성하면 개교 전년도 6월에나 예산집행이 가능하다"며 "당분간 이런 식의 공사판 학교 운영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안형영기자 ahnhy@hk.co.kr
■ "미완공 학교" 왜 생기나
미완공 학교 입주에 따른 학습권 침해 시비가 해마다 반복되고 있는 원인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교육인적자원부가 학교 건립에 지원하는 교부금의 지급 시기를 문제로 꼽는다.
현재 교육부는 신설 학교를 위한 지방교육재정 교부금(올해 2조6,000억원)을 학교 설립 2년전에 지급하고 있다. 각 시·도 교육청은 교육부의 교부금이 나오면 설계용역과 부지매입에 착수한다.
그러나 사유지의 경우 개발이익을 기대하는 지주와의 협의가 쉽지 않아 대부분 1년 이상의 시간을 끌며 중앙토지수용위원회의 강제집행 결정을 받아 토지를 수용하는 실정이다. 학교 건립의 시간 중 절반을 토지 매입에 매달리는 것이다. 공사에 들어가도 태풍이나 집중호우 등 돌발상황으로 인해 공기가 연장되는 것이 보통이다.
인천시교육청 최병준 교육위원은 "정부가 학교 부지 매입에 걸리는 시간 등을 고려하지 않고 예산을 배정하기 때문에 늘 공사기간이 부족해진다"고 지적했다.
또 학급 수요에 대한 체계적 관리계획이 없는 점도 문제다. 개발 붐에 따라 경기 용인 등 서울 근교 위성도시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었지만 학교 건립은 계획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참교육을위한학부모연대 경기지부 이택림 지부장은 "택지개발을 추진하는 각 지자체와 학교설립을 맡은 교육청의 협의가 원활하지 않아 택지개발과 학교 설립이 따로 놀고 있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내년부터 개학 전 완공이 확실하지 않은 학교에 학생배정을 하지 않기로 하고, 시·도별 '학교개교준비상황점검반'도 운영할 방침이다.
그러나 일선 교육청에서는 "교육부가 2001년부터 학급당 학생 수를 35명 이하로 낮추라고 밀어붙여 놓고선 이제 와서 미완공 학교에 학생을 배정하지 말라고 하는데 도대체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되는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교육 당국의 이런 불협화음이 공교육의 부실화를 더욱 부채질한다는 지적이 많다.
/황재락기자 find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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