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雪國)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멎었다. 건너편 좌석에서 처녀 하나가 일어나 이쪽으로 와서 시마무라 앞의 유리창을 열고 눈의 냉기를 내밀며 멀리 외치듯이 역장을 불렀다. "역장니-임. 역장니-임.">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의 앞부분이다. 이걸 여기 '길 위에' 옮겨 적는 까닭은 어제 어느 신문에서 이 소설을 패러디한 아주 재미있는 만평 하나를 보았기 때문이다. 갑자기 내린 눈 때문에 열 몇 시간 고속도로에 갇혀 있다가 빠져나온 한 여자가 울상이 되어 신설국(新雪國)을 읊는 장면으로 김호영 화백이 그린 만평이다. 'I.C를 빠져 나오자 한심한 세상이 나타났다. 무사안일, 늑장의 대명사, 관료들이 펼쳐놓은 대책 없는 세상이…' 국경의>
아마 이어지는 상황은 이랬을 것이다. 정산소를 나가려는데 차량 저지대가 길을 막았다. 창구에서 여직원이 유리창 밖으로 손을 내밀며 이렇게 말했다. "손니-임. 손니-임. 아무리 그래도 고속도로 통행료는 주고 가셔야죠." 그래서 사람들이 또 한번 길 위에서 열을 받았다는 것 아니겠는가. 어쩌면 이렇게도 눈치가 없는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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