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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길위의 이야기]설국, 다시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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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길위의 이야기]설국, 다시 쓰기

입력
2004.03.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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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雪國)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멎었다. 건너편 좌석에서 처녀 하나가 일어나 이쪽으로 와서 시마무라 앞의 유리창을 열고 눈의 냉기를 내밀며 멀리 외치듯이 역장을 불렀다. "역장니-임. 역장니-임.">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의 앞부분이다. 이걸 여기 '길 위에' 옮겨 적는 까닭은 어제 어느 신문에서 이 소설을 패러디한 아주 재미있는 만평 하나를 보았기 때문이다. 갑자기 내린 눈 때문에 열 몇 시간 고속도로에 갇혀 있다가 빠져나온 한 여자가 울상이 되어 신설국(新雪國)을 읊는 장면으로 김호영 화백이 그린 만평이다. 'I.C를 빠져 나오자 한심한 세상이 나타났다. 무사안일, 늑장의 대명사, 관료들이 펼쳐놓은 대책 없는 세상이…'

아마 이어지는 상황은 이랬을 것이다. 정산소를 나가려는데 차량 저지대가 길을 막았다. 창구에서 여직원이 유리창 밖으로 손을 내밀며 이렇게 말했다. "손니-임. 손니-임. 아무리 그래도 고속도로 통행료는 주고 가셔야죠." 그래서 사람들이 또 한번 길 위에서 열을 받았다는 것 아니겠는가. 어쩌면 이렇게도 눈치가 없는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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