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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불복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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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불복종

입력
2004.03.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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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미국의 사상가이자 수필가인 헨리 D 소로는 30대 시절 노예제도에 반대하며 세금납부 거부 운동을 벌이다 전 가족과 함께 투옥됐다. 단 하루만에 석방되긴 했지만 그는 이 체험과 생각을 2년 뒤 '시민 불복종'이라는 책으로 정리했다. 소로는 일생을 일정한 직업 없이 교사, 측량, 목공 등의 일을 하면서 사상가들과의 친교 속에 관찰과 사색을 깊이 한 사람이다. 30대 후반의 저서 '월든―숲속의 생활'에서 그는 월든 호수가 숲속에서 문명의 도구를 버리고 마치 원시인 같이 생활한 경험으로 '무(無)의 삶'이 얼마든지 가능하고, 오히려 더 깊을 수 있다는 초월주의적 메시지를 감동적으로 전했다.■ 소로가 말한 불복종은 개인의 양심에 바탕한 판단으로 국가·정부의 행위에 대해 법을 어겨서라도 저항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인도사상의 영향도 있다고 하지만 미국 독립 선언의 저항권의 사상을 발전시킨 것이라는 해설이 뒤따른다. 그는 민주주의 제도 속에서 저항권을 행사하는 최후의 방법이 시민불복종이라고 생각했다. 소로의 이 사상은 러시아의 톨스토이, 인도의 간디에게도 퍼져나가 비폭력 저항 운동의 근간이 됐다. 특히 간디는 영국에 맞선 식민지 해방투쟁에서 불복종·비타협·비폭력의 무저항주의를 실천했고, 이는 간디주의(Gandhiism)로 불렸다.

■ 지난해 미국에서는 가두 시위대를 대통령으로부터 일정 거리 격리시키도록 한 경호수칙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위헌이라는 시민단체들의 제소가 화제였던 적이 있다. 대통령 행사 시 시위대는 반드시 800m 밖으로 물러나있어야 하는데, 이는 구호가 적힌 플래카드를 보지 못하는 '거품'속에 대통령을 가두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따라서 대통령 자신은 물론, 국민을 위해서도 대통령이 이 '거품'을 터뜨리고 나와야 한다는 논란이었다. 그러나 이후 시위대의 근접시위 시도는 예외 없는 체포와 사법절차의 대상을 벗지 못했다. 일종의 불복종 운동이지만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한 셈이다.

■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개정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에 대해 불복종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개정법이 집회와 시위를 통한 집단적 의사표출의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민단체들은 헌법소원을 내는가 하면 새 법에 대항하는 '불복종 매뉴얼'까지 만든다고 한다. 법 개정에는 그만한 이유도 있을 것이고, 한편으로 새 법이 미비할 수도 있으니 타협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법에 대한 심각한 대항이 대통령과 청와대에서 나오고 있으면 이건 진짜 걱정이다. 대통령이 선거중립의 법 규정을 위반했다는 선관위의 결정에 대해 법이 잘못됐다는 대응, 그 것이다. 불복종이나 저항권이 대통령에게도 해당하는 권리라도 되는 것인지 어지럽기 짝이 없다.

/조재용 논설위원 jae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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