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저기 쌓여 있는 하얀 눈, 그 눈이 녹아 축축하게 젖은 마당, 그리고 가끔씩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 그러나 7일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에서는 이런 추위와 바람을 녹이고도 남을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대웅전과 극락전 그리고 너른 마당을 메운 1,000여 사부대중. 숨소리조차 삼키며 한 선승의 법문에 온 신경을 집중한다.한국 불교의 1번지 조계사가 '한국 불교 전통 선을 말한다'는 주제 아래 개최한 '전국 선원장 초청 대법회'의 현장이다. 2월 15일부터 일요일마다 열리고 있는 법회에 그 동안 봉화 각화사 태백선원장 고우 스님, 축서사 주지 무여 스님, 학림사 오등선원 조실 대원 스님의 법문이 있었다.
7일은 충북 보은군 법주사 총지선원장 함주(含周·63)스님 차례. 전국선원수좌회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스님은 충청지역에 내린 폭설로 절에서 큰 길까지 걸어 나오는 고생 끝에 어렵게 조계사에 도착했다. 그리고 이날 주제인 '마음은 무엇인가'에 대해 입을 열었다. "사람의 마음이 무한한 능력을 갖고 있지만 그 마음 때문에 세상을 잘못 봅니다. 군인 아들을 둔 사람은 군인만 보면 제 아들이라고 여깁니다. 그러나 그 군인은 자기 아들이 아닌 다른 군인입니다. 새가 울면 슬프게 운다고도 생각하고 기쁘게 운다고도 생각합니다. 새는 기쁘게도, 슬프게도 울지 않고 그냥 울 따름이지요. 사람의 마음 때문에 잘못 보고 잘못 듣는 것입니다."
마음을 놓아야, 마음을 다스려야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것이 잘 안 된다. "너는 나보다 못하니까 내 밑에 있어야 한다, 나는 너보다 나으니까 더 많이 가져야 한다… 이런 욕심때문이지요. 그러나 생각해 보세요. 초식동물은 풀 뜯어먹고 살게 돼 있고, 육식동물은 다른 동물 먹으며 살게 돼 있어요. 사람도 다 살아가게 돼 있습니다. 그러니 욕심을 가질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욕심을 버리지 못해 번뇌와 망상이 생기고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는 겁니다. 욕심 버리면 마음이 편해지고 세상 보는 직관력이 생깁니다."
수행공부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스님은 "욕심 버린 편한 마음에, 도를 성취하려는 용맹심이 더해지면 그 어렵다는 수행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때 수행하는 기본 자세로 스님은 다시 마음을 강조한다. 그 마음이 진실되고 순수해야 한다. "수행은 절대로 편하게, 쉽게 할 수 없습니다. 하고 싶은 것 다하고, 먹고 싶은 것 다 먹고, 가고 싶은 곳 다 가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행을 고행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도를 얻는 길이 그리 쉽겠습니까. 나태해지지 않기 위해서는 역시 진실하고 순수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스님의 법문이 이어지는 동안 사부대중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했다. 옆 자리 사람에게 낮은 소리로 내용을 물어보는 가 하면 볼펜으로 수첩에 꼼꼼히 적는 불자도 있었다. 대웅전에 들어가지 못해 마당 멍석에 앉아 대형 TV로 동시에 중계되는 법문을 시청하는 불자들 역시 차가운 날씨에도 조금의 흐트러짐이 없었다. 선승의 한마디 한마디를 놓치지 않으려는 '마음' 때문이었다. 잠시 산중 선방으로 변한 조계사의 일요일 한낮. 50대 한 아주머니는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편하게 하는 것이 진정한 삶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절을 나선다.
법회는 앞으로 화엄사 선등선원장 현산 스님(3월14일), 조계종 총무원장 법장 스님(3월21일), 조계종 전(前) 기본선원장 영진 스님(3월28일), 조계종 기본선원장 지환 스님(4월11일), 제주 남국선원장 혜국 스님(4월18일), 미 버클리 육조사 주지 현웅 스님(4월25일), 쌍계사 금당선원 선덕 도현 스님(5월2일), 수덕사 수좌 설정 스님(5월9일)의 말씀으로 이어진다. 출가 후 20∼30년간 수행정진을 거듭해온, 지난해 잇따라 타계한 서암, 청화, 월하, 서옹스님 등 1세대의 맥을 이을 차세대 선승들이다. 조계종 관계자는 "도심에서 산중 선승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드문 기회"라고 했다. 굳이 날씨를 들먹이지 않아도, 갈수록 고달픈 요즘의 우리 삶을 생각하면 앞으로 더 많은 불자들이 조계사를 찾을 것이다.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