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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컴 투 사이언스]<10> 저선량 방사선 이용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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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컴 투 사이언스]<10> 저선량 방사선 이용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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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3.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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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약과 화학비료, 산성비 등과 같은 오염물질의 증가로 농업 환경이 갈수록 척박해지고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식물의 생장 촉진은 물론 지구 생태계 보호에 크게 기여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됐다. 그 기술을 가능하게 한 물질은 다름 아닌 방사선. 위험한 물질로 인식되어온 방사선이 어떻게 그와 같은 작용을 할 수 있을까.독과 약은 종이 한 장 차이

예전에 술을 좋아하는 어르신들의 밥상에는 으레 반주가 곁들여졌다. 밥을 먹으면서 그렇게 한두 잔 마시던 술을 우리는 약주라고 불렀다. 우리 선조들은 중풍을 앓거나 졸도하는 사람에게 독성이 강한 사향을 사용하기도 했으며, 독약으로 알려진 비상이 약으로 쓰이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이처럼 독성 물질을 소량으로 적절하게 사용해 인체에 유익한 효과를 내는 것을 '호르메시스(hormesis) 이론'이라고 한다. '소량의 독에는 자극 작용이 있다'는 안트―슐츠의 법칙도 호르메시스 이론과 맥을 같이 한다. 유해량 이하에서 자극을 나타내는 작용 물질로는 항생물질, 호르몬, 비소, 농약 등 화학적 작용을 하는 것과 열, 초음파, 방사선, 자기장 등 물리적 작용을 하는 것이 모두 포함된다.

제2차 세계대전을 종식시킨 결정적인 계기는 1945년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이다. 당시 생존자 수십만 명이 800렘(rem·방사선 피폭량의 단위)까지 피폭되었는데, 전후 40년간에 걸친 피해자 역학조사에서 이상한 현상이 발견됐다. 30렘 정도의 피폭자 그룹은 일반인보다 발암률이 높았으나, 10렘 정도의 피폭자 그룹은 일반인보다 발암률이 오히려 낮고 기형아 자녀의 출산율도 낮게 나타났다.

당시 원자폭탄 제조에 참여했던 미국 한포드(Hanford) 연구소 종사자 3만여명에 대한 32년간에 걸친 추적 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5∼20렘 정도 피폭된 종사자의 경우 암이나 백혈병에 의한 사망률이 방사선과 무관한 일반인의 암·백혈병 사망률보다 낮게 나타난 것이다.

방사선에 대한 호르메시스 이론을 뒷받침하는 근거 자료는 자연 방사선에도 해당된다.

일본 미사사 방사능 온천과 중국의 광둥성에 위치한 고준위 자연 방사선 지역 등이 좋은 예다. 라듐과 라돈이 많이 함유된 일본 미사사 온천 지역에 사는 주민의 암 사망률(3.13%)이 전국 평균(7.75%)보다 현저히 낮게 나타났다.

또 다른 고장보다 자연 방사선이 많은 중국 광둥성 지역은 기후, 생활 양식 등이 같은 근방 지역보다도 암 사망률이 15% 정도 낮았다.

이처럼 지역마다 자연 방사선량이 다른 이유는 암석 등에 함유된 자연 방사선 물질의 양이 다르기 때문인데, 우리나라의 연간 자연 방사선량은 240밀리렘 정도이다. 이는 병원에서 흉부 X선 사진을 찍을 때 얻는 노출량인 40밀리렘의 약 6배에 해당되는 양이다.

식물의 생장 촉진 및 발아율 증가

그럼 이와 같은 방사선 호르메시스 이론을 식물에 이용하면 어떤 효과를 거둘 수 있을까. 한국원자력연구소 저선량방사선 식물이용기술 개발팀이 연구한 결과, 적정량의 저선량 방사선은 식물의 종자 발아, 생장 촉진, 수확량 증가에 긍정적 효과를 발휘했다. 먼저 5년이나 묵은 파 종자에 4Gy(gray·방사선 흡수선량)의 방사선을 4시간 동안 쪼였을 때 발아율이 높아졌다. 방사선을 전혀 쪼이지 않은 파 종자의 발아율은 42% 정도였으나, 4Gy의 방사선을 쪼인 파 종자는 78%의 발아율을 보인 것이다.

무의 초기 생육을 비교한 결과에서도 저선량 방사선을 쪼인 개체가 생육이 촉진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산성비의 피해 정도에 대한 실험에서도 적정량의 방사선을 쪼인 식물체의 피해가 덜한 것으로 나타났다. 종자에 방사선을 쪼여 1개월 정도 생장 시킨 고추에 pH3.0의 인공산성비를 뿌려준 다음 15일 후 생장 정도를 비교한 결과, 12∼20Gy의 방사선을 쪼인 개체가 다른 개체보다 산성비에 대한 내성이 높았다.

그밖에도 개화 촉진, 수량 증가, 양분 및 유용 활성 물질 증대, 내한성 증가 등의 여러 가지 유익한 효과가 있는 것이 밝혀졌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에서도 저선량 방사선의 효과를 인정해 방사선 호르메시스에 관한 본격적인 연구를 진행중이나, 최근까지도 식물과 동물에 대한 방사선 호르메시스의 메커니즘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생물체의 많은 유전인자 가운데 현대 과학에서 실제 활용하고 있는 인자는 소수에 불과한 만큼, 활용되지 못하는 식물의 여러 유전인자 중 일부가 방사선에 의해 활성화되면서 나타난 게 아닌가 추측해볼 따름이다.

앞으로 방사선에 의한 활성화 유전인자들을 추적해 메커니즘이 규명되면 모든 식물체에 일률적으로 방사선 이용기술을 적용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미래의 농업은 획기적으로 변하게 된다.

농약을 치는 대신 방사선을 쪼여 병충해를 해결하고, 가축들도 방사선으로 질병을 예방하거나 회복시킬 수 있게 될 것이다.

또한 발아가 잘 되지 않는 인삼, 오가피, 송이버섯 등 천연 약용식물의 생산을 늘려 엄청난 경제적 이익을 거둘 수도 있다.

방사선이 더 이상 공포의 물질이 아니라 인류의 식생활을 풍요롭게 비추어주는 축복의 빛으로 우리 곁에 다가설 날도 멀지 않았다.

김 재 성 한국원자력연구소 저선량방사선 식물이용기술개발팀장

고려대 농학박사 원자력연구소 방사선이용연구부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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