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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인의 여대생 "링에선 냉혹한 승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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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인의 여대생 "링에선 냉혹한 승부사"

입력
2004.03.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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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한번 더! 올려, 올려!"김용호 감독의 구령에도 불구하고 이현주(20·경영1)씨는 풀썩 쪼그려 앉는다. 머리칼이 달라붙은 얼굴은 땀으로 흥건하다. 이대로 주저앉을까. 그러나 "30초 남았어!"란 한마디에 벌떡 일어나 다시 주먹을 날린다. 눈빛은 매섭고 발 놀림은 날렵하다.

5일 오후6시 서울대 체육관 옆 복싱동아리 포스(FOS). '5인의 서울대 여성복서'가 때 늦게 찾아온 강추위가 민망하게 온 몸에 비지땀을 쏟아내고 있다. 8∼13일 강화도에서 열리는 제2회 아마튜어복싱연맹회장배 전국여자복싱대회 참가를 앞두고 마지막 훈련에 한창 열을 내고 있는 것.

이들의 목표는 오직 '사각의 링' 정복이다. 동아리방 칠판엔 '5명 전원 금메달'이란 각오가 적혀있다. "감독님이 쓴 거에요. (우린) 그냥 최선을 다할 뿐이죠." '퍽퍽' 경쾌하게 샌드백에 달라붙는 주먹이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우린 할 수 있어!"

호루라기 소리에 맞춰 빨라지는 줄넘기, 송곳 같은 잽, 작렬하는 원투 펀치, 가공의 상대를 향해 주먹을 날리는 섀도우(Shadow·그림자) 복싱, 남학생과의 한치 양보 없는 스파링…. 빨간 글러브의 마법에 걸린 그녀들은 무아지경이다.

"사진 한 장 찍고 합시다"라는 부탁에 갑자기 전열이 흐트러진다.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올리고 발그레한 볼의 땀을 닦고 "어머어머, 예쁘게 찍어주세요"라고 애교를 떤다. 영락없는 스무살 여대생의 모습이다. 김 감독도 "평소엔 말도 없고 수줍어하는 애들이 링에만 올라가면 냉정한 승부사로 변하는지 모르겠다"고 혀를 내두른다.

그녀들도 이유를 모른다. 지난해 대회에서 금메달을 딴 이원미(24·건축3)씨는 "링에 오르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도 않는다"고 했다. 김진화(22·사회교육)씨는 "정정당당하게 부딪히는 승부인 만큼 최선을 다할 뿐"이라고 했다.

"가스나야! 뭔 놈의 권투고, 얼굴 망가져븐다"란 부모와 주변의 걱정도 팽개치고 글러브를 낀 이유도 가지가지다. "살을 빼고 싶어서(이현주)", "라일라 같은 선수가 되고 싶어서(이원미)" "몸치의 멍에를 벗기 위해서(김진화)" "튀고싶어서(홍승윤·산자3)" 등등.

복싱 덕분에 살도 빼고 좋은 사람도 사귀고 인내심도 기른다는 그들은 이제 링의 승자가 되기 위해 글러브 끈을 조여 맨다. 부탁이 하나 있단다. "제발 무서운 애들이라고 쓰지 마세요. 소개팅 길 막혀요." 5인 여성복서의 간절한 출사표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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