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독일 철학자 칸트 서거 200년이 되는 해이다. 그가 '실천이성비판'에서 "도덕적 원칙의 바탕은 신의 계명이나 요구도 아니고 우리 스스로의 자율성이다"라고 설파한 구절이 떠오른다. 지금 정치자금 수사로 나라 전체가 들썩이고 있다. 이 수사를 주도하는 검찰이 과연 어떤 잣대로 이 위기 상황을 극복할지 국민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필자가 가장 걱정하는 것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다. 과거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고 돈 안 드는 정치―가능할지는 모르지만―를 구현한다는 대의명분에 대해서야 이의가 있을 리 없다. 그러나 세계화 경쟁에 가장 절실한 것은 경쟁력 강화를 위한 '선택'이다. 우리의 우선 원칙은 '2만 달러', '동북아 중심'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나? 지금 세계 경제가 회복 국면에 들어서고 있는 상황에서 기업을 움츠리게 만드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 우리의 선택은 '부패 방지'가 아니고 '경제 살리기'이다. 이 순서는 이상이 아니다. 구체적인 현실이어야 한다.
지금 우리 경제는 청년 실업, 고령화, 신용 불량, 이공계 전공 회피 등 자본주의 쇠퇴기에나 보이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여기에 기업가 정신마저 위축되고 투자 부진이 장기화된다면 세계 경제 호황에 동승하지 못하는 처참함에 빠져들어 갈 것이 분명하다. 경제를 살리는 선봉은 기업이다. 기업인 투자에 돈보다 우선하는 것이 있다. '마음'이다. 마음이 불편한 사람은 투자를 안 한다.
지금 정치인들에 대한 사회적 비난이 기업인에게 그대로 전가되고 있다. 기업 처벌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기업이 제공한 정치자금이 자신의 독점적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대가성 자금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과연 외환 위기 이래 한국의 대기업이 정치적으로 보호받은 권익이 무엇이 있는가. 오히려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정부 규제와 개입이 팽배하고 있을 뿐이다. 계좌 추적, 내부 거래 조사, 세무 조사 등 다양한 방법으로 기업에 대한 감시가 강화되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기업인은 어떠한 정신구조를 가져야 할까? 기업을 하지 않는 것이 상책일 것이다. 최근에는 지배구조 3개년 로드맵을 제시하면서 대기업에 대한 규제를 더욱 공언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금 외국 기업들은 한국에 투자하기를 싫어한다. 독일의 현실과 유사하다.
경제학자 슘페터는 자본주의의 특성을 '기업인의 부단한 정신구조 파괴'에서 찾고 있다. 비생산적 정치가 생산적 경제의 발목을 잡는 것은 이제 구조적으로 단절되어야 한다. 이것은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한 첫걸음이다.
지금 우리는 불법 정치자금을 수사하고 재발 방지 차원에서 제도적 보완점을 찾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기업인 처벌이 주 관심사가 된다면 본말이 전도된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 국민은 경제가 살아날 것인가를 안타깝게 주시하고 있다. 중요하고도 시급한 일을 방치하고 불요불급할 뿐더러 공정하지도 못한 일에 집중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기 바란다. 이제 검찰은 대선자금 수사를 마무리하고 경제 살리기에 힘을 보태야 한다.
그렇다고 기업은 부패 방지에 수동적이어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세계적 경제학자인 프리드먼은 '자본주의의 개혁은 밑에서부터 이루어져야 한다. 문명의 성공은 정부가 아니고, 기업, 예술, 문학 등 모든 분야에서 이니셔티브를 갖고 추진할 때 가능하다'고 말했다. 하이에크의 자유주의 개념의 정수도 바로 이것이다.
지금까지 기업인 단체들은 왜 '기업 지배구조 지수(CGI·Corporate Governance Index)'를 제출하지 못하는가? 왜 스스로 '기업 사회 책임제(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사회 보고'를 도입하지 못하는가? 왜 시민단체들이 사회 정의 논의를 독점하고 있는가?
철학자 니체는 '부패는 한 민족의 늦가을'이라 말했다. 부패 방지를 위해 이제 기업인들이 앞장서야 한다. 기업인들이 건전한 자본주의 발전과 세계화를 위해 적합한 태도와 행동 규범을 갖추어야 한다. 정치적 합리성이 경제적 합리성에 따라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기업인은 우리 공동체의 일원이지 이방인이 아니다. 기업인도 칸트가 말한 것 같이 성숙하고 자율적인 인간이 되자.
박 성 조 자유베를린대 정교수/서울대 BK21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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