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은 출판사가 거의 없을 겁니다. 그는 기획, 편집, 디자인, 카피,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최고의 경지에 올라 있었거든요."최근 심근경색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난 이창훈 바움출판사 사장의 죽음을 지켜본 출판인들 사이에 애도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43세의 한창 일할 나이에 동분서주하다 떠났다는 것도 애통하지만, 탁월한 안목과 재능을 맘껏 발휘할 즈음에 갔다는 사실이 그들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하고 있다.
출판계에서 그는 '도사' '미다스의 손'으로 통했다. 서강대 국문과 79학번인 그는 80년대 초 집안사정으로 학업을 포기하고 군복무를 위해 고향인 울산에 내려가 문화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출판과 인연을 맺었다. 그는 서점 총무를 맡은 지 몇 년 만에 하루 매출액을 800만원으로 끌어올렸다. 책값이 3,000원도 안되던 시절, 지방 소도시 23평 규모의 매장에서 그것은 기적이었다. 독자 구매성향을 읽고, 독자가 읽고 싶은 책을 귀신같이 골라준 결과였다.
책에 대한 그의 본능적인 감각을 보여주는 일화는 수두룩하다. 시드니 셸던의 '시간의 모래밭'이 나왔을 때 30만부는 팔린다고 예상했고 그대로 적중했다. 그가 기획한 소설 '영심이'는 35만부가 팔렸고, 김상옥씨의 '하얀 기억속의 너'는 130만부, 버니지아 울프의 '세월'은 55만부를 기록했다. 몇몇 책은 그가 제목과 카피를 바꾸자마자 베스트셀러에 진입하기도 했다.
이러한 입 소문이 나자 전국의 출판사 사장은 물론 기획자, 편집자, 영업자들은 모두 울산 문화서점을 찾아갔다. 기획안을 검토해 달라, 원고를 봐 달라, 제목을 달아 달라는 요청이 잇따랐다. 얼마든지 안정된 출판사에서 억대 연봉의 편집자가 될 수도 있었지만, 그는 "한 곳에 얽매이기 싫다"며 거부했다. 그렇게 17년간을 출판계의 숨은 주역으로 살았다. 그리고 2002년 출판사를 직접 차렸고, 지난 해에만 2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20년 지기인 한 출판사 사장의 말은 안타까움을 더해준다. "고인은 일에 매달려 결혼도 여태 미뤘어요. 아무리 바쁘고 힘들 때도 주변의 자문에 성실히 응했어요. 심각한 불황과 과도한 업무가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아닌지…. 갈수록 그가 떠난 빈 자리는 더욱 커 보입니다."
/최진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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