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불량자 문제와 경기활성화 등 당면 경제현안의 해결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는 '이헌재 경제팀'이 경제학 대신 심리학 교과서를 펴 들었다. 경제 주체의 심리적 요인을 도외시한 채 계량적 분석에 치우친 경제적 처방만으로는 정부 정책을 미리 예상해 이득을 챙기는 일부의 시장교란 행위를 막지 못했다는 진단에 따른 것이다.이헌재 경제부총리는 지난 4일 기자간담회에서 "정부가 내놓은 정책의 경제적 내용보다는 심리적 측면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에 따라 정부 정책도 경제주체의 심리적 요인을 우선적으로 고려해 만들어지고 집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개인채무회생법'과 신용불량자 대책 등 이 부총리 취임 이후 윤곽을 드러낸 주요 정책은 심리적 효과에 대한 검증을 거쳐 마련됐다. 이 부총리는 "개인채무회생법 적용을 받는 채무자의 상환기간을 최대 8년으로 정한 것은 경제적 합리성 보다는 심리적으로 3∼5년은 너무 짧고, 10년은 너무 길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부총리가 수시로 '신용불량자에 대한 원금 탕감은 절대 없다'고 밝히고 있는 것도 지난해 자산관리공사의 원금 탕감조치 이후 신용불량자 사이에 조성된 도덕적 해이를 견제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 재정경제부 관계자도 "가계 부채나 신용카드 문제 등도 은행이나 카드회사의 경제적 분석에 따른 결정보다는 경쟁업체의 움직임에 무조건 쫓아가는 '쏠림' 현상 때문에 발생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정부는 시장원리를 중시하지만, 정부 방침을 따르지 않으면 엄청난 손해를 보게 된다는 심리적 공감대가 형성되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헌재 경제팀의 심리적 접근에 대해 전문가들은 일단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고 평가하면서도, 자칫 심각한 후유증을 야기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A증권의 한 펀드매니저는 "현 경제팀에 대한 긍정적 기대로 금융시장이 안정세를 찾아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이같은 안정세가 추세적 반전인지 아니면 이 부총리의 개인적 친분관계에 따른 주요 은행장 등 금융계 리더들의 일시적 협조 때문인지는 불확실하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처럼 경제 정책이 정치권의 무리한 요구로 뒤바뀌는 사태가 재연될 경우 이헌재 경제팀의 새로운 접근은 오히려 더 큰 시장혼란을 부를 수 있다"고 우려했다.
/조철환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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