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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03.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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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도 슈사쿠 지음·한은미 옮김 시아출판사 발행·1만원

소설 '침묵' '바다와 독약'으로 유명한 일본 작가 엔도 슈사쿠(遠藤周作·사진·1923∼1996)는 이순을 넘어선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감히 '꽤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다"고 했다. 얼마 남지 않은 죽음의 시간이 늘 뇌리를 떠나지 않을 텐데도 무서워하거나 피하려는 기색이 없다.

노년에 쓴 수필집 '회상'에서 엔도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두려워할 죽음과 고통을 끌어안는 여유를 보여준다. 그도 물론 한밤중에 눈을 반쯤 뜬 상태로 숨을 거두는 광경을 상상하곤 할 정도로 죽음이 두렵다. 그러나 '죽을 때가 되면 죽어야 한다'는 경구를 되새기며 인간의 숙명을 덤덤하게 수용한다. 죽음에 능통한 사람이 되자고 거듭 마음을 다잡는다.

이 책의 원제는 '잘 사는 법 잘 죽는 법'. 엔도는 "잘 사는 것이 잘 죽는 것이며, 잘 죽었다는 것은 잘 살았다는 것을 뜻한다"고 명쾌하게 해답을 제시한다.

살만큼 산 노년의 여유에서 나올 법한 이야기는 새겨들을 만하다. "인생에서 일어나는, 아무리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나 사소한 추억조차도 쓸모없는 것은 없다. 그것은 오히려 귀중한 것을 그 속에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고통, 불행, 병마도 다 겪어야 할 이유가 있다는 것. 노벨문학상 후보로 여러 차례 거론될 정도로 인정 받은 그의 작품들도 "인생 전체의 3분의 1을 차지한 병을 뼈속 깊이 받아들여" 얻은 물질적, 정신적 결과물이라고 털어놓는다.

/문향란기자 iam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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