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쓸 때마다 찾아 드는 의문 하나. 개봉 영화 소개 난을 뒤져 보면 적잖은 영화들이 매 주 새로 선보이건만, 그들은 과연 어디에 있는 걸까? 워낙 적은 스크린에서 선보여서겠지. 개봉되더라도 얼마 버티질 못하거나, 버티더라도 다른 영화와 교차 상영되거나 해서겠지.주요 개봉관으로부터는 철저하게 외면당하기 일쑤인 탓도 있을 터이고. 하긴 예정보다 일주일 먼저 개봉되는 김기덕 감독의 ‘사마리아’도 베를린영화제 감독상 수상이라는 프리미엄이 없다면, 이렇게 빨리 선보이는 건 불가능했으리라.
유럽 여행을 위해 인터넷 채팅에서 만난 남자들과 원조교제를 벌이는 두 여고생, 재영(서민정 분)과 여진(곽지민)의 이야기(‘바수밀다’)에서 출발해 예기치 못한 재영의 죽음을 맞이한 뒤 재영이 거친 남자들을 만나 관계를 맺고 그 대가로 재영이 받은 화대를 되돌려주는 여진의 이야기(‘사마리아’)를 거쳐, 딸의 행각을 우연히 목격한 뒤 복수를 행하고 끝내 딸을 홀로 남겨둔 채 자수를 선택하는 여진 아버지(이얼 분)의 이야기(‘소나타’)로 나아가는, 3부 구성의 ‘섬뜩한’ 드라마.
그 때문이다. 일반 관객의 반응 및 전문 평자들의 평가 못지않게 영화가 과연 얼마나 버틸지 궁금한 까닭은. 겨우 4억7,000만원이란 극저예산으로 빚어냈다는, 겨우 11차례 촬영으로 총 14일 만에 찍었다는 영화의 운명이 그 이전에 나온 ‘나쁜 남자’의 성공적(?) 길을 걸을지, 아니면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및 그 밖의 작품들의 처절한 흥행 실패를 맛볼 것인지 자못 궁금한 것이다. 변변히 내세울 만한 스타도 없는데.
그래도 여진 역 곽지민의 연기는 눈길을 끈다. 아마추어적 풋풋함과 프로페셔널적 가능성을 성공적으로 과시한다. 특히 이얼의 연기는 발군이다. 퍽 인상적이었던,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성우를 압도한다. 여로 모로 ‘복수는 나의 것’의 동진(송광호 분)을 떠오르게 한다.
절제와 폭발성을 동시에 구현한다고 할까. 성격화 또한 압권이다. 좀처럼 보기 힘든 복합적 아버지 상이다. 언뜻 원조교제에 관한 선정적 작품쯤으로 오해, 보도된 영화가 실은 구원과 용서, 화해에 관한 도덕적ㆍ반성적 드라마로 비상하는 건 무엇보다 그 성격화 덕분이다. 초라하기 짝이 없는 기술적 완성도는 물론 드라마투르기에서도 심심치 않게 균열을 드러내는 영화에 남다른 주목거리를 만드는 것도 이런 미덕들 때문이고.
그래도 너무 심각하다고? 그래, 부담스럽다고? 그런 분들에겐 튀는 캐릭터들과 멋진 연기, 예측 불허의 플롯, 속도감 넘치는 템포 등으로 무장한 흥미 만점의 로맨틱ㆍ블랙 코미디, ‘러브 미 이프 유 데어’(감독 얀 사뮈엘)를 강추한다. 원제 ‘애들 장난’(Jeux d’Enfants)보다는 “날 사랑할 테면 해봐”라고 선언하는 영어 제목이 그 내용을 단숨에 짐작케 해주는, 너무나도 도발적이며 발칙한 러브 스토리 말이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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