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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황우석을 내버려 두라

입력
2004.03.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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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황우석 교수가 언젠가 이런 말을 했다. 우리나라는 사람을 알아주고 업적을 인정하는 데 인색하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면서 미국의 한 생명과학자를 예로 들었다. 그가 세계적 학술지에 발표한 논문은 황 교수가 보기에 잘못된 것이었다. 오류를 알려주자 그는 수정논문을 발표하겠다고 약속했다. 학자로서의 생명을 포기하는 치명적인 일이었다. 그러지 말고 함께 연구해 발표하자는 말에 그는 매우 고마워하면서 황 교수의 연구결과를 알리는 데 앞장섰다. 우리 학계 같으면 오류 인정은커녕 되레 공격이나 했을 텐데 선뜻 잘못을 시인하고 다른 사람의 연구를 수용하는 태도가 놀라웠다는 것이다.체세포 복제배아를 통해 줄기세포를 만들어냄으로써 황 교수는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이 발표 이후 축하전화와 인사·취재차 그를 찾는 사람들이 더 늘어나고 수많은 화분이 답지했다. 기자회견 전의 사전보도는 유감스러운 일이었으나 그의 성공을 반기는 사람들은 이처럼 많다. 그는 이제 충분히 인정 받고 있다. 그러나 이런 인정을 받기까지 황 교수는 많은 시련을 겪었다. 연구비를 확보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는 이제 더 바빠졌지만, 원래 밤낮과 휴일 명절도 없이 사는 사람이므로 요즘의 분주함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그에게 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우리 사회에 있다. 또 다른 '대∼한민국' 식의 집단적 갈채와 환호의 이면에서 한국사회의 냄비체질을 엿볼 수 있다. 그가 노벨상을 받게 될는지는 알 수 없다. 받는다면 본인은 물론 국가적으로 큰 경사다. 그러나 노벨상 수상후원회를 결성하고, 이에 반대하는 시민운동이 벌어져 엉뚱한 갈등이 조성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한 지방대의 교수가 정부의 연구비가 유명 재경대학에 편중되고 있다며 그것은 선택과 집중이 아니라 선택과 독점이라고 비난한 일이 있다. 황우석팀에 대한 지원과 후원이 이와 비슷하게 선택과 독점으로 이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본인도 그것을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100억 원 이상을 들인 대작 영화들이 스크린을 과다 점유하면서 대박을 터뜨리는 바람에 다른 영화들이 설 곳이 없어지는 것과 같은 현상이 학계에도 빚어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지금부터 할 일은 황 교수의 연구가 촉발한 생명윤리문제에 대한 기준을 서둘러 마련하고, 다른 학자들의 연구를 더욱 부추기는 것이다. 황 교수는 난자를 이용한 복제실험을 이미 중단했다고 밝히면서 정부의 적절한 방침 마련을 촉구한 바 있다. 생명윤리법의 국회 통과가 늦어진 사정이 있지만, 항상 정부 정책이 현장을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굼뜬 게 문제다. 복지부는 며칠 전에야 생명윤리·안전 태스크 포스팀 현판식을 갖고 법의 내년 시행에 대비한 관리체계 구축에 나섰다. 체세포 복제배아 연구의 허용범위는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가 결정하는데, 그 기구도 내년에나 가동된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일은 황 교수를 그대로 놓아두는 것이다. 지난해에도 과기부장관 기용설이 나왔고 지금도 이런저런 직함을 안기려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런 것은 나중에 맡거나 안 해도 되며 노벨상도 천천히 받아도 된다. 자신의 말마따나 본인이 아니라 후학들이 받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연구에 매진하는 것이 그에게 더 어울린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상임위원이 퇴직 후 2년간 공직선거 출마를 금지한 규정에 대해 헌법소원을 내고 위헌결정을 받아낸 뒤 열린우리당 비례대표로 공천신청을 했다. 한나라당의 공천심사를 맡았던 대학교수도 비례대표 공천신청을 해 물의가 빚어졌다. 적어도 그런 식의 몰염치하고 부정직한 짓을 하지는 않을 사람이다. 독실한 불교신자인 그는 신이 시켜도 인간 복제는 하지 않겠다는 말도 했다.

그를 내버려 두라. 가축도 놓아 먹여야 더 잘 크고 더 건강해진다.

임 철 순 수석논설위원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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