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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석의 TV홀릭]폭소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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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석의 TV홀릭]폭소클럽

입력
2004.03.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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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코미디언들이 사람 웃기기가 너무 힘들다며 농담 비슷하게 하던 얘기 하나. 다른 나라 사람들은 슬쩍 조크만 던져도 박장대소를 하며 웃어주는데, 한국 사람들은 시작 전부터 팔장을 턱 하니 끼고 '니가 얼마나 웃기나 보자' 하는 자세로 코미디언을 본다는 얘기. 하긴, 여전히 한국 사람이 웃음에 인색한 편이기는 하니 이런 코미디언의 고충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뒤집어 생각해보면 이건 신세한탄이기도 하다. 가수가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코미디언은 웃겨 주는 게 일 아닌가. 어쩌면 코미디언의 진짜 실력은 웃기기 힘든 상황에서 관객에게 박장대소를 이끌어낼 때 빛나는 것인지도 모른다.KBS2 '폭소클럽'은 그래서 웃긴다. 출연진이나 제작진들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이 프로그램은 요즘 개그 프로그램중 '마이너리그'에 가깝다. '폭소클럽'은 국내 코미디 프로그램 중 유일하게 전 코너를 스탠드업 코미디 형식으로 꾸미고 있다. 그래서 한 순간이라도 관객을 제대로 웃기지 못하면 분위기가 갑자기 싸늘해진다. 일반 꽁트 형식으로, 다른 출연진들과 짜여진 각본 속에서 움직이는 코미디는 반응이 조금 좋지 않더라도 자기들끼리 대충 수습할 수 있다. 그러나 관객에게 계속 말을 거는 스탠드업 코미디는 단 한 순간이라도 코미디언의 의도대로 웃기지 못하면 당장 흐름이 끊겨버린다.

게다가 여기에 나오는 코미디언들은 대부분 '폭소클럽'이 유일한 출연작인 신인들이거나, 전성기가 지난 코미디언들이다. KBS '개그콘서트'나 MBC '코미디 하우스'처럼 스타가 포진해있는 '메이저리그'는 박준형이나 정준하같은 인기 코미디언들이 나온다는 것만으로도 시청자가 웃을 준비를 한다. 심지어 요즘 '개그콘서트'는 출연자가 실수를 해도 관객들이 격려의 박수를 쳐주기도 한다.

그러나 '폭소클럽'에서는 어림도 없다. 스타도, 이렇다 할 유행어도, 도와줄 동료도 거의 없다. 무대에 올라가면 오직 자기 힘으로 관객들을 웃기고 내려와야 한다. 그래서 '폭소클럽'에는 '메이저리그'의 세련됨은 없다.

그러나 마이너리그 특유의 열기와 거칠지만 날것 그대로의 생생함이 존재한다. 인터넷에서 욕설을 섞은 방송으로 인기를 얻은 김구라는 "축구선수는 공을 차고, 국회의원은 욕을 처먹는다"라며 대놓고 국회의원을 비난하고, 김형곤은 아예 "여자는 사랑과 섹스를 원하지만, 남자는 섹스만 원한다"며 방송에서 은근히 금기시되었던 섹스라는 단어를 거리낌없이 사용하기도 한다.

대기하고 있는 출연자는 넘쳐 나고, 살아 남으려면 어지간한 금기는 그냥 깨버리면서 관객을 제대로 웃겨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폭소클럽'에는 어느 순간부터 한국 TV에서 사라져버린 성인 코미디 특유의 걸쭉한 풍자가 살아있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개그콘서트'나 '코미디하우스'처럼 좋은 시간대로 옮기기도 힘들 것이고, 전 연령대의 시청자들이 편하게 웃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어떤가. 세상엔 꼭 모든 사람이 볼만한 메이저리그만 필요한 건 아니지 않은가. 가끔은 온 가족과 웃기보다는 혼자 키득키득 거리며 볼 더 '찐한' 코미디가 필요할 때도 있다. 월요일 밤 11시, 시간도 참 '색다른' 뭔가가 어울릴 때 아닌가.

/대중문화평론가 lennonej@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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