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렇게 놀라세요?"지금껏 TV나 영화 등에서 보여준 모습 중 자신과 가장 가까운 인물을 꼽으라고 했더니 엄정화(33)는 1초도 생각하지 않고 "드라마 '아내'(KBS2)요"라고 말한다. 그러고는 고개를 뒤로 젖히고는 '꺄르르'웃음을 쏟아 놓는다. 그 대답을 듣고 당황할 것을 예상했다는 듯. "사랑에 관해서는 한 사람만 바라보는 순정파라는 점에서 닮았어요."
그녀는 스스로를 "소심한 A형의 전형"이라고 말한다. 마당발이다, 잘 논다, 누구하고나 잘 지낸다 등 엄정화를 떠올릴 때 발랄, 명랑한 모습만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놀라운 고백이다. "친한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아요. 학창시절에는 말 없는 우울한 아이였다니까요"라며 말꼬리를 흐리더니 반응이 시원치 않자 "진짜라니까요. 얼마나 내성적인데요"라고 다시 한번 강조한다.
이렇게 조용조용 나직한 말투로 엄정화는 최근 발표한 8집 음반 '셀프컨트롤' 이야기를 꺼내 놓는다. 8집은 사람들의 예상과 많이 다를 지도 모른다. 특히 '포이즌' '몰라' 'Escape' '페스티벌' '다가라' 등으로 이어지는 노래방용 신곡을 기다리던 여성 팬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엄정화는 낮은 목소리로 읊조리듯 'Everything Is Changed', 즉 '모든 것이 변했다'고 말한다. "타이틀곡 'Eternity'는 따라 부르기는 어려운 노래죠." 차가운 기계음과 날카로운 엄정화의 목소리가 만들어 내는 'Eternity' 등 새 음반에서 그는 일렉트로니카를 시도했다. "작곡가들도 '뭐라구?'라고 의아하다는 반응이더니, 이내 '재미있는 작업이 되겠다'고 하더군요."
듣는 이의 평가는 기다려 봐야 할 테지만, 그녀 자신에게 이번 작업은 "끊임없는 감동의 연속"이라고 한다. 정재형을 비롯해 롤러코스터 달파란 윤상 정재일 정원영까지 쟁쟁한 이들이 음반에 참여했다. "지금까지는 그런 느낌이 없었어요. 어느 날은 녹음실에 있다가 어둠 속에서 혼자 기타 연주를 하는 정재일씨 모습에 감동 받아 밤새도록 소주를 마신 적도 있었어요."
12일 영화 '홍반장'의 개봉을 앞두고 있기도 하다. 음반 홍보에 바빠 정작 자신은 아직 영화를 보지 못했다. 이제 연기에도 물이 오른 엄정화. 음반도 잘 팔리지 않는데 굳이 노래를 계속하는 이유를 물었다. "돈을 바랄 수 없을지도 몰라요. 알아요. 그냥, 아직 내 노래가 나오면 좋아해 주는 사람이 있고 나도 좋으니까요. 그리고 이 나이에도 무대에 서 화려한 모습을 보여 주는 게 후배들에게도 자극이 될 것 같아요."
지금까지 그녀는 "항상 운이 좋았다"고 한다. 하지만 운이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다. 그녀와 오래 작업한 주영훈은 "엄정화처럼 재능있는 사람은 많지만 그녀처럼 성공하기는 힘들다. 일할 때 그는 프로다. 온몸이 녹초가 돼도 카메라만 돌아가면 그녀는 힘을 내는 사람"이라고 설명한다. 92년 가수 데뷔 이후 언제나 즐겁기만 한 건 아니다. 6집 활동 때는 흥이 나지 않아 힘만 들던 기억이 남아 있다.
스트레스 받을 때는 "음악을 크게 틀어 놓고 집안 구석구석 청소를 하면 풀린다"는 엄정화. 그녀의 가장 큰 장점은 느긋한 마음에 있는 듯했다. "데뷔 전에 힘들게 지내던 시절 생각하면 지금은 행복하죠. 지금 내가 가진 것에 충분히 고마워요."
/최지향기자 mis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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