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초가 되면 새로운 기대와 다짐으로 충만하다. 부산한 연말 행사들을 거치면서 금주와 금연을 다짐하고, 새해 달력이 있는 수첩을 장만해 빈칸마다 일년을 가늠하며 뿌듯해진다. 침대머리에 표어까지 쓴다면 각오는 충분하다. 한 주는 놀랄 정도로 계획이 착실하게 실행되지만 실천의 힘이 무너지고 어긋나는 것은 두어 주가 채 지나지 않아서다.이제 다시 다짐을 해야 할 시기이다. 마침 우리에겐 음력이 있다. 띠도 음력으로 하는데 음력설이 진짜 새해가 아니겠는가. 두 발 앞서기 위해 한 발짝 물러선다. 물러서지만 다짐은 강도를 더해지기 마련. 슬그머니 물게 되었던 담배를 치워버리고, 쓰다 둔 일기를 다시 쓰기 시작하고 처박아둔 책을 꺼내게 된다. 시작의 숫자가 두 번이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묵은 옷에서 거금이 발견된 듯 횡재를 한 기분이다.
공짜로 얻은 돈은 더 빨리 나가는 법. 헝클어짐이 더 빨리 다가온다. 2월 따뜻한 바람과 아직 기세를 꺾지 않은 겨울바람이 엎치락뒤치락 하는 동안 몸과 마음의 결합도 단단한 듯싶다 가는 어긋나곤 한다. 연말의 다짐은 조금씩 멀어지고 저 멀리 달려가는 시간의 흐름도 가속도를 붙였다. 숨겨 놓은 숫자도 없고, 다음 새해를 기다리기에는 너무 멀다.
양력으로도 음력으로도 새해를 모두 맞아버렸다면 이제 남은 것은 봄밖에 없다. 봄.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지 않은가. 계절의 처음과 함께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 3월의 첫날 만세를 부르듯 만세를 부를 수밖에. 그리하여 나는 다시 처박아둔 수첩을 꺼내 적어보는 것이다. 열심히 살자. 그런데 나는 이 봄을 견딜 수 있을까. 그땐 달력을 반 접어 시작하면 될 일이다.
천 운 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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