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는 서울 홍릉에 있다. 그러나 KIST의 후문은 성북구 월곡동, 지하철 6호선 상월곡역 부근에 있다.홍릉 쪽 KIST 정문이 깊은 미지의 장소로 들어가는 듯한 엄숙한 느낌을 준다면, 월곡동 후문 밖에서 들여다 보이는 풍경은 비교적 넓고, 정겹다. 풀밭, 놀이터, 키 작은 농구대, 테니스장, 작은 아파트, 그리고 강아지 한두 마리가 뛰놀던 수 년 전까지는 더욱 그랬다.
30여년 전, 수십 가구가 등잔불 아래 모여 살던 충북 제천의 작은 산골에서 단지 지능지수가 높게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아버지가 데려다 놓고 내려가신 자리도 후문 건너편 산 아래 마을이었다. 월곡초등학교 시절, 호기심으로 후문 밖에서 기웃거리면 진달래, 철쭉 꽃 한 아름과 뛰어 놀고픈 공터, 그리고 작은 동산들이 눈에 들어 왔다. 가끔은 동무들과 몰래 들어 갔다 들켜서 경비 아저씨들의 꿀밤맞이가 되기도 하고….
중학 시절에는 단체 견학을 갔다가 성채 같은 본관 건물에 놀라기도 하고, 대학원 때는 논문을 찾으러 후문에서 원내 도서관으로 가기도 했다.
1987년 겨울 KIST 연구원으로 처음 출근한 날 연구실에서 입사 동기인 그녀를 만났다. 단지 며칠 늦게 출근했다는 이유만으로 4167과 4169, 오차 범위에 드는 사번 차이로 선배 대접을 하여야 했다. 우리는 KIST의 역사와 건축물이 뿜어 내는 고고함과 기라성 같은 선배 연구원들의 연구 분위기에 압도당해 늘 두 개의 수레바퀴처럼 의지하고 다녔다. 연구실에서 실험실로, 자료실로, 머리를 맞대고 토론하다가 함께 도서관으로 향했다.
목련과 벚꽃이 어우러진 그늘 아래서 산책을 했고, 어스름한 저녁에 연구실을 나서며 은행나무 길게 늘어선 길을 따라 후문까지 같이 걸었다. 후문 버스정류장에서 161번 버스를 타는 그녀를 배웅했고, 그 덕에 가끔은 생맥주와 통닭을 대접받기도 했다.
우리는 2년쯤 지나 크리스마스 무렵에 결혼해서 후문과 인접한 아파트에 살게 되었다. 다섯 살배기 딸 아이는 후문을 들어서면 나타나는 풀밭 위 작은 놀이터를 유난히 좋아했다.
내게 일과 사랑이 공존하던 곳, 어린 시절 추억과 젊은 날의 패기, 사랑과 우정의 감동, 지금은 중년의 고독이 머무는 곳, KIST의 후문과 그리로 이어지는 가로수 길은 정겹다. 오늘도 은행나무 길을 걷는다. 제법 나이가 들어 고고함마저 느껴지는 은행나무들, 추억처럼 걸터앉은 이파리들이 초록에서 갈색으로 바뀌고, 하염없이 길 위로 낙하하고, 그 위를 흰 눈이 덮고, 잎이 떠난 나뭇가지에서 다시 새 싹이 돋아 오르는 계절의 변화를 응시하면서 내가 걸어 온 길과 가야 할 길이 어디쯤 있는가도 헤아려 본다.
주 병 권 KIST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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