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TV 뉴스가 경쟁력 없는 슈퍼마켓의 상품 진열과 닮았다면 지나친 비유일까?1분20초짜리 리포트들을 죽 내보내는 지상파 TV 3사의 메인 뉴스를 보고 있자면, 이것저것 늘어놓기는 했지만 정작 살만한 물건이 눈에 띄지 않는 슈퍼마켓 같은 느낌이 든다.
현재 TV 3사 메인 뉴스의 일일 보도건수(스포츠·날씨 제외)는 대략 KBS '뉴스9' 32건, MBC '뉴스데스크' 28건, SBS '8뉴스' 25건이다. 뉴스 한 건 당 소요시간은 80초에서 90초 이내다. 뉴스에 대한 분석은커녕 정보를 제대로 전달하기에도 턱없이 부족하다.
국내 뉴스 한 건의 길이가 얼마나 짧은지는 외국과 비교해보면 금세 알 수 있다. 영국 BBC 뉴스가 건당 평균 114.3초, 미국 NBC 뉴스가 119.2초인 반면, 우리는 81.4초에 불과하다.
왜 이런 차이가 날까. 보도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영국과 미국의 뉴스는 몇몇 선별된 뉴스에 긴 시간을 할애하는 보도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반면 국내 뉴스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과학, 국제 등 모든 분야의 뉴스들을 나열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국내 뉴스가 '보도의 질'이 아니라 '양' 경쟁으로 치달은 것은 1990년대 중반부터. 당시 KBS는 MBC에 뒤쳐진 뉴스 시청률을 올리기 위한 한 방법으로 보도 건수를 40개 이상으로 대폭 늘렸다. 그랬더니 정말 시청률이 올랐다. 물론 여러 요인 중의 하나였을 뿐이지만, 효과가 수치로 나타나자, 보도 건수 늘리기는 타 방송사로 급속 확산됐다.
뉴스의 가치경쟁이 아니라 건수를 늘리는 소나기 보도 행태는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TV 뉴스 종사자들 역시 많은 뉴스를 보도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시청자들이 많은 양의 보도를 선호할 것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갖고 있는 듯하다.
방송 3사의 메인 뉴스는 단신성 보도를 무분별하게 나열하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건수를 20개 안팎으로 줄이고, 시간도 110초 내외로 대폭 늘릴 필요가 있다.
동시에 뉴스 한 건에 사용되는 화면 쇼트의 수도 조정돼야 한다. 쇼트 수가 80초당 20개 이상인 현재 구성으로는 뉴스의 흐름이 너무 빨라 시청자가 기억하기 어렵고 정보손실도 크다.
TV 뉴스는 양적으로 신문 저널리즘의 기능을 따라갈 수 없다. 시간의 제약 때문이다. 또 요즘은 24시간 뉴스만 전하는 채널들이 있고, 인터넷을 통해서 뉴스가 신속하게 전달되고 있어 신속성을 강점으로 내세울 수도 없다.
따라서 TV 뉴스만의 독특한 질적 특성을 최대한 발휘하지 못한다면, TV 뉴스가 갖는 비교우위는 사라질 수밖에 없다.
시청자들은 슈퍼마켓처럼 특색없이 죽 늘어놓은 상품이 아니라, 가치에 따라 선별된 심층 뉴스를 기대한다.
/서울여대 언론영상학과 교수 joo@swu.ac.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