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도 해도 너무한다. 그렇다. 긴 말이 필요 없이, 말 그대로, 해도 해도 너무한 것이 요즘 국회다. 서청원 의원 석방결의안을 통과시켜 지탄을 받더니, 이번에는 그 동안 시민단체와 학계 등이 그렇게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원의 지역구를 15석 늘리는 정치개악안을 통과시키고 말았다. 게다가 이 같은 법안을 통과시킨 뒤 다수 의원들이 국회를 빠져 나가 정작 중요한 민생 법안들은 처리조차 못하고 말았다니, 시민사회의 요구, 그리고 시대정신과는 정반대로 행동하는 청개구리 국회의 청개구리 정치에 할 말을 잃게 된다.물론 국민들도 "줄여도 시원치 않은 터에 늘리다니"하고 분노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국회의원 수를 늘린 것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다. 필요하다면 국회의원 수를 늘릴 수도 있다. 그리고 정치개혁시민연대와 같은 시민단체들, 나아가 학계, 정치권 대표들이 국회의장의 의뢰를 받아 구성한 범국민정치개혁협의회(범개협)는 국회의원 수를 현재의 273명에서 299명으로 늘리자고 주장해 왔다. 다만, 조건은 지역구를 현재의 227석에서 200석으로 줄이는 대신 비례대표 의석을 현재의 46석에서 99석으로 늘리는 것이었다. 즉 비례대표를 늘려야 하지만 현역 의원들의 반대로 지역구를 대폭 줄이기 어려운 만큼 지역구를 다소 줄이되 전체 의석을 늘리는 방식으로 여론에 반하는 의원 증원에 총대를 메어준 것이다.
비례대표와 지역구의 차이가 뭐 그리 중요하다고 비례대표를 늘리기 위해 국회의원수를 늘리느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비례대표는 중요하며 한국 정치의 발전을 위해서 대폭 확대해야 한다. 우선 현재의 지역구는 승자가 모든 것을 차지하는 방식이라 10표 중 6표 정도가 아무 쓸모없는 사표가 되고 있다. 이 같은 사표도 의미 있는 표가 될 수 있도록 해 주는 제도가 바로 비례대표 제도이다.
뿐만 아니라 현재와 같은 지역구 제도는 국회에서 남성과 기득권 세력을 과대 대표하는 대신 여성,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를 배제시키고 있다. 그 결과 여성 국회의원 비율이 세계 최저 수준인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또 비례대표를 대폭 확대할 경우 민주노동당 같은 진보 정당도 지금은 사표가 되고 있는 지지표로 국회 진출이 가능해져 한국 정치가 균형을 이루는 데 기여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국회가 자신들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이 같은 시대정신과는 정반대로 지역구 의석을 늘리고 만 것이다. 특히 한심한 것은 당이 인기가 없는 만큼 비례대표 확대에 소극적이고 개혁에 저항해 온 한나라당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그래도 개혁 정당을 자처하고 있는 민주당이 지역구 확대에 가장 앞장섰다는 점이다. 물론 인구하한선을 낮춰서 지역구 수를 늘리지 않을 경우 자신들의 기반인 호남 지역 의석이 줄어든다는 문제점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원칙을 지키기로 정평이 나 있는 조순형 의원이 당 대표가 돼서 기대를 했었는데 밥그릇 지키기에는 원칙이고 뭐고 다 던져버리는 것을 보니, 실망감은 더욱 커진다.
애당초 자신들의 밥줄 문제를 국회에 맡기는 현재의 제도가 문제지만 어차피 지역구 확대는 엎질러진 물이다. 그리고 총선 일정을 고려할 때 총선 전에 이를 번복하는 것은 불가능한 실정이므로 우선은 현 상황에서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데 지혜를 모아야 한다. 전체 의석을 현재대로 유지하는 경우 지역구가 늘어난 만큼 비례대표는 15석이나 줄어드는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없다. 따라서 전체 의석을 범개협 안처럼 299석으로 늘려 비례대표 의석이 부족하지만 최소한 46석에서 57석으로 늘리는 것이 현 상황에서는 최선의 방법이다. 그러나 이 문제도 청개구리 국회의 청개구리 정치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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