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핑커 지음·김한영 옮김 사이언스북스 발행·4만원
'빈 서판'(라틴어 Tabula Rasa)은 깨끗이 닦아낸, 아무 것도 씌어있지 않은 서판을 가리킨다. 영국 철학자 존 로크(1632∼1704)는 이 개념을 내세워 인간의 마음은 타고난 특성이 없고 경험이 각 개인의 차이를 만들 뿐이라며 세습 왕권과 신분제의 정당성을 부인했다.
언어심리학자 스티븐 핑커(미국 하버드대 교수)가 쓴 '빈 서판'(2002)은 인간 본성을 설명하는 중요한 틀로 오랜 세월 지지를 받아온 이 개념이 과연 과학적으로 올바른 것인지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그에 따르면 '빈 서판'은 매우 도덕적이고 진보적인 개념처럼 보이지만 실은 감상적인 독단이자 비과학적인 도그마일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양육이나 환경, 문화는 중요치 않고 유전이나 본능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말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의 입장은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는 절충주의다. 그는 인간의 본성을 인정하지만, 여기서 본성은 모든 인간의 보편적 특성 뿐 아니라 개인마다 달리 타고나는 것을 포함한다.
이 책에서 그가 강조하는 것은 인간 본성에 대한 좀 더 과학적인 탐구다. 부록을 빼고 본문만 750여 쪽에 이르는 두툼한 책이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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