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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꼭 같은 것보다 다 다른 것이 더 좋아

입력
2004.02.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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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구병 지음 보리 발행·8,800원

'그리스 철학자 엠페도클레스는 우주를 구성하는 밑뿌리가 물, 불, 흙, 공기인데, 이들은 사랑의 힘으로 섞이고 뭉쳐서 우주의 삼라만상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했지. 그러니까 사랑은 모든 것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힘이고, 미움은 모든 것을 낱낱이 흩어지게 만드는 분열의 원인인 거야.'(아버지가 나래에게)

1995년부터 전북 변산 생태공동체 마을에서 논밭을 일궈온 교수 출신 농사꾼 철학자 윤구병(61)씨가 10여 년만에 편지 보따리를 다시 풀어놓았다. '꼭 같은 것보다 다 다른 것이 더 좋아'는 92년에 나온 같은 제목의 초판을 보완, 수정해 내놓은 편지글 형식의 철학 이야기다. 그 동안 허리가 휘게 일하면서 터득한 삶의 지혜를 청소년들에게 들려주고 있다.

편지를 주고받는 사람은 3명으로 가난한 광부의 딸인 민주와 친구 나래, 나래의 아버지이다. 이들의 편지에서는 빈곤, 입시, 환경오염, 남녀차별 등의 사회문제와 이에 대한 깊은 사색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민주가 나래에게 보낸 글에는 빈민들의 처절한 삶이 담겨 있다. '우리 아빠는 초등학교를 다니다 말고 껌팔이, 구두닦이, 아이스케키 장사 등 안해본 일이 없으셔. 강원도 탄광에서 10년간 일하다 병에 걸려 쫓겨난 뒤 돌아가셨어.'

철학과 교수인 나래 아버지는 민주가 생계를 위해 학교를 그만두고 공장에 다닌다는 소식을 듣고 격려의 편지를 보낸다. '나도 대학 선생이지만 마음 속으로는 대학에서 책으로 얻는 지식보다 일터에서 땀 흘려 일하면서 깨우치는 지혜가 훨씬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소설가나 화가, 농구선수가 따로 없어도 살 수 있지만 농민이나 노동자가 없으면 하루도 살 수 없지.'

나래 아버지는 어려웠던 자신의 어린 시절 얘기도 털어놓는다. 중·고교 다닐 때 두 번이나 가출하고 마침내 자퇴했던 일, 혼례식 때는 동네 가게에서 빌려온 상자로 잔칫상을 만들어 조촐하게 식을 올렸던 일 등. 또한 친일 청산, 한글 사용, 전교조 문제 등도 거론하고 있다.

윤씨는 책을 다시 낸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 나는 책이 하루빨리 낡아서 쓸모가 없어지기를 바랐어요. 세상이 좋아지면 책 안에 들어있는 이야기들은 자연스럽게 빛이 바래게 될 테니까요. 하지만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바뀐 것 없어요. 나아지긴커녕 갈수록 공기와 땅, 물이 죽어가고, 가난한 사람은 더욱 가난해지고 있으니."

그는 특히 "우리 사회 청소년들은 자유 영역이 없어지고 학습 시간만 늘어난 결과 스스로 삶을 통제할 줄 모르게 됐다"며 "선배·동료들과 더욱 치열하게 지키고, 싸웠으면 이렇게 되진 않았을 텐데"라고 아쉬워했다. 하지만 그는 최근 공동체 생활에 대해서는 매우 만족하는 모습이다. "요즘도 젊은 사람 못지않게 일하고 있어요. 물질 에너지 사용을 줄이고 생체 에너지 사용을 늘려가다 보니 몸은 힘들지만 마음이 즐거워요."

/최진환기자 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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