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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년 콘도업자 살해용의자 무죄 단서 다 놓치고 "뒷북" 경찰 부실수사 도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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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년 콘도업자 살해용의자 무죄 단서 다 놓치고 "뒷북" 경찰 부실수사 도마에

입력
2004.02.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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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인가, 피해자인가.' '7년3개월 동안의 해외도피 이유는 무엇일까.'1996년 콘도업체 사장 살해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해외로 도피했던 용의자가 지난해 7년3개월 만에 검거돼 국내로 송환된 뒤 사형이 구형됐으나 증거 부족으로 무죄를 선고받고 석방됐다. 특히 당시 피해자 부인의 신고로 용의자를 검거했던 경찰은 용의자가 수사 경찰관과 함께 사우나에 갔다가 도주했는데도 이를 은폐한 채 "별다른 혐의점이 없고 범행을 극구 부인해 귀가시켰다"고 거짓 발표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더욱이 경찰은 용의자의 범행 여부를 가릴 수 있는 증거물인 시신에 감겨져 있던 노끈을 분실하는 등 허술하게 증거물을 관리한 것으로 밝혀져 부실수사 비난에 직면했다.

사건 개요

A(45)씨는 96년 6월13일 리조트 건설부지 매매 문제로 알게 된 콘도업자 유모(당시 46세)씨를 테헤란로에 있는 자신의 오피스텔로 유인, 둔기로 살해한 뒤 인근 철물점에서 구입한 비닐과 노끈으로 시신을 묶어 여행가방에 담아 강원 평창군 청옥산 해발 1,200m 지점에 유기한 혐의로 검거됐다. 당시 유씨 부인(52)은 남편 실종 이틀 뒤인 6월15일 남편 계좌에서 돈이 인출된 사실을 확인, A씨의 현금 인출 장면이 담긴 은행 CCTV 화면을 확인한 뒤 경찰에 A씨를 검거토록 했다. 그러나 경찰은 A씨가 범행을 부인한다는 이유로 하루 만에 귀가 조치했으나 A씨가 다음날 일본으로 출국한 것으로 밝혀지자 뒤늦게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하고 인터폴에 수사공조를 의뢰하는 등 법석을 떨었다. A씨는 하와이에서 절도혐의로 검거돼 조사를 받다 인터폴 수배 사실이 확인돼 지난해 9월 국내로 강제 송환됐다.

"범인 가능성 있으나 증거 없어"

검찰은 사건 당일 A씨가 유씨에게 세 차례 전화한 뒤 두 차례 현금을 인출한 점 어떤 물건을 들고 오피스텔로 들어왔다가 다음 날 새벽 가방과 흰색 비닐포장 물건을 손수레에 싣고 나간 점 손수레에서 발견된 혈흔이 유씨의 혈액형과 같은 점 A씨로 추정되는 사람이 근처 철물점에서 노끈을 사 간 점 등을 들어 A씨를 강도살인 및 사체유기 혐의로 기소하고 사형을 구형했다.

그러나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김병운 부장판사)는 26일 "간접 정황만으로 피고인이 범인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여러 정황상 A씨가 범인 혹은 공범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그러나 공소사실을 확신할 결정적 증거가 없는 만큼 유죄라는 의심이 가도 이는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A씨가 산 노끈이 시신을 감고 있던 노끈이라고 볼 수 없고, 손수레에서 발견된 혈흔이 유씨 혈액이라고 단정하기도 어렵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사건 이후 증거물 보관을 소홀히 해 시신을 묶는데 사용된 노끈을 분실, A씨가 철물점에서 산 노끈과 같은 것인지 비교가 불가능했다. 경찰은 또 손수레에서 발견된 혈흔이 유씨 것과 같은 A형 혈액이었다는 이유만으로 정밀검사를 하지 않았으나 용의자 A씨 역시 유씨와 같은 혈액형으로 밝혀져 혈흔은 증거능력을 상실하고 말았다. 재판부는 "검찰은 A씨가 유씨의 재산을 노리고 범행 했다고 하지만 A씨가 유씨 계좌에서 190만원만 인출하고 48만원의 잔금을 남겨둔 점을 볼 때 검찰이 밝힌 살해 동기는 납득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김지성기자 j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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