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오늘]<1042>하야카와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오늘]<1042>하야카와

입력
2004.02.27 00:00
0 0

1992년 2월27일 영어학자 새뮤얼 이치예 하야카와가 86세로 작고했다. 이주 일본인의 자식으로 캐나다 밴쿠버에서 태어난 하야카와는 몬트리얼의 맥길 대학와 미국 위스컨신 대학에서 영어 의미론을 전공하고 여러 대학에서 가르쳤다. 미국인으로 귀화해 캘리포니아에 정착한 뒤에는 공화당 소속 상원의원을 지내기도 했다.하야카와의 가장 잘 알려진 저서는 '생각과 행동 속의 언어'다. 그는 이 책에서 언어의 함축적 의미를 따져보며, 으르렁말(snarl words)과 가르랑말(purr words)을 구별했다. 그가 든 예를 인용하자면, "이런 버러지 같은 놈!"(You filthy scum!)은 으르렁말이고, "넌 세상에서 제일가는 여자야"(You're the sweetest girl in all the world)는 가르랑말이다. 앞의 말은 남을 도발하거나 위협하는 으르렁거림이고, 뒤의 말은 고양이가 가르랑거리듯 남의 호감을 사기 위한 언어행위다. 으르렁말이나 가르랑말에서는 언어의 소통 기능 가운데 중립적인 정보 기능이 거의 사라지고, 그 대신 표현적 기능이 두드러진다. 그래서 으르렁말이나 가르랑말에 담긴 의미는 개념적 의미라기보다 정서적 의미다. 으르렁말의 극단적 형태는 욕설을 포함한 각종 금기어다. 반면에 연인의 환심을 사기 위한 과장된 찬사나 북한에서 김일성 주석 부자에게 붙이는 갖가지 존칭 수식사들은 가르랑말의 극단적 형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사이에는 여러 단계의 으르렁말과 가르랑말이 있다. 화백(畵伯)이 가르랑말이라면 환쟁이는 으르렁말이고, 빙인(氷人)이 가르랑말이라면 뚜쟁이는 으르렁말이다. 어떤 말들은 그 말을 대하는 사람의 경험과 신념에 따라 으르렁말에 속하기도 하고 가르랑말에 속하기도 한다. 예컨대 자유주의, 공산주의, 민족주의, 좌파 같은 정치 언어들이 그렇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