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미국계 제약사 한국릴리의 영업사원으로 입사한 홍지아(23·여)씨는 첫 출근하는 날 회사의 윤리강령 등을 담은 '레드북(Red Book)'에 서명을 하면서 깜짝 놀랐다. 뇌물을 주고 받거나 타당하지 않은 접대 등을 받은 경우 즉시 '해고'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던 것. 홍씨뿐 아니라 이날 입사한 15명의 신입사원도 모두 레드북에 서명했다. 한국릴리 양현석 차장은 "빨간색 표지 때문에 레드북이란 별칭이 붙었지만 직원들 사이에는 비윤리적인 행동에 대해 '레드카드'를 받는다는 의미로 통하기도 한다"고 말했다.불법 대선자금 제공으로 국내 기업들의 투명하지 못한 경영이 다시 도마 위에 오르면서 선진 외국 기업들의 윤리 경영이 주목받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 사이엔 이미 일반화한 윤리 경영이 국내 기업들에게는 아직 선언적 의미에 그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특히 최근 국제기구들이 '윤리라운드'를 통해 윤리경영의 세계 표준화를 시도하고 있다. 이제 윤리경영은 기업 생존을 위해서도 불가피한 선택이 되고 있다.
글로벌기업들 구체적 실천지침 제시
글로벌 기업의 윤리 경영은 구체적인 실천 지침으로 자리잡고 있다. 특히 쓰리엠(3M) 윤리 경영은 정교한 매뉴얼과 엄격한 적용으로 명성이 높다. 3M의 윤리규정 매뉴얼에는 '정부관료에 대한 접대와 선물은 지위고하, 횟수, 양에 관계없이 금지', '부당 취득한 금품은 3배에 해당하는 벌금을 회사에 납부', '사업상 상대방에게 받을 수 있는 금품과 향응은 연간 50달러 한도(단 커피와 도넛은 제외)' 등이 명시돼 있고 이를 어긴 직원은 물론 사실을 은폐한 직원까지 불이익을 주고 있다.
존슨앤존슨의 사례는 경영학석사(MBA) 과정에서 단골로 배우는 윤리경영의 모범 케이스. 1930년대부터 기업 윤리를 강조한 존슨앤존슨은 82년 타이레놀병에 독극물을 투입한 범죄가 발생, 8명이 사망하며 위기를 맞았다. 당시 컨설팅 기관과 일부 경영진은 타이레놀 브랜드를 포기할 것을 주장했다. 그러나 존슨앤존슨은 '투명성이 최선(Trasparency is the best policy)'이라는 판단 아래 2억4,000만 달러의 비용을 감수, 3,100만병을 수거, 폐기했다. 이러한 존슨앤존슨의 조치에 기업 가치는 더욱 높아졌다.
이외에 GE가 '기업 윤리의 생활화'를 경영자의 첫번째 실천 과제로 못박고 있고 로열더취-쉘 그룹은 정치 자금의 제공을 전면 금지하고 있는 등 윤리경영의 사례는 무궁하다. 한국바스프의 경우에는 윤리 규정을 자사 직원 뿐 아니라, 사내외 파견 직원과 이해관계가 있는 제3자까지 적용하고 있다. 규정을 위반한 경우엔 '신문고' 제도를 통해 누구나 신고할 수 있다.
윤리경영, 글로벌 스탠더드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최근 일정 기준의 윤리경영시스템 구비여부를 거래소 상장기준으로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미국은 이미 90년대 윤리준법프로그램을 도입하기 시작, 포춘지 선정 500대 기업의 90%이상이 강력한 윤리준법체계를 구축한 상태다.
최근에는 윤리경영의 세계표준화도 시도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이미 97년 'OECD 국제상거래뇌물방지협약'을 채택한 데 이어 미 윤리임원협회(EOA·Ethics Officer Association)는 최근 '기업윤리경영 표준안'을 제정, 이를 국제표준화기구(ISO)에 세계표준으로 채택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또 기업의 윤리수준을 평가한 후 이를 근거로 윤리 등급을 발표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물론 미국안이 일방적으로 세계 표준으로 채택되는 데엔 유럽연합(EU)과 아시아권의 거부감이 강해 쉽지 않겠지만 윤리경영이 글로벌 스탠더드로 부상하고 있는 기류에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연세대 박헌준 교수는 "윤리경영은 일시적 유행이 아닌 시대적 요구사항으로 21세기 기업생존을 위한 필수"라며 "윤리강령 (Code of conduct), 준수 감독조직(Compliance check organization), 교육을 통한 공감(Consensus by ethic education) 등 '3C'를 기본으로 하는 윤리경영 시스템을 도입하려는 노력이 절실하다"고 밝혔다.
/박일근기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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