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말 '공민왕 시해 사건'에 연루돼 조상의 묘를 잃어 버렸던 후손들이 도굴 덕에 600년 만에 묘를 되찾게 됐다.공민왕은 익비(益妃)를 임신시킨 홍륜과 밀고자인 최만생을 죽이려다 오히려 홍륜에게 시해당한다. 이 과정에서 사건에 연루된 안동 권씨일가는 권진과 그 아버지가 죽는 등 화를 당했다. 그러다 1374년 권진의 형 권적의 사위인 청주 한씨 문경공 한수가 몰락한 처가를 수습해 권진의 할아버지인 권준의 제사를 잇게 됐다.
이 후 600년이 흘러오면서 권준의 후손들은 분묘의 위치를 잊어버렸고 청주 한씨 집안은 이 묘를 집안 사람의 묘로 오인해 관리해 왔다. 그러던 중 1991년 분묘가 도굴로 인해 훼손, 내부에 있던 벽화가 발견되면서 권준의 묘임을 알게 된 안동 권씨 후손들은 2002년 2월 뒤늦게 청주 한씨 문열공파 종중을 상대로 분묘기지권(남의 땅에 묘지를 설정한 사람이 묘를 모시기 위해 땅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 확인 청구소송을 냈다.
서울고법 민사6부(송진현 부장판사)는 26일 분묘 근처에서 출토된 묘지석 조각을 복원한 결과, 권준의 생전 행적과 분묘를 조성한 경위 등이 기록돼 있는 점을 들어 원고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비석에는 문열공 한씨의 묘라 쓰여 있지만 이 비석은 300여년 전에 제작돼 오인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김지성기자 jski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