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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외교 인프라의 확충

입력
2004.02.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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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포스트의 농업담당기자 댄 모건이 1979년에 쓴 '곡물상(Merchants of Grain)'이란 책을 보면 아칸소주(州)의 한 벼 경작농민은 "미국 최고의 쌀장수는 헨리 키신저"라고 했다. 해마다 쏟아지는 엄청난 양의 잉여농산물을 해외시장에 내다파는 일이 미국에겐 국가적 과제다. 키신저를 톱 세일즈맨이라고 한 것은 그에게 무슨 기발한 쌀 세일즈 기법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가 바로 미 합중국의 국무장관이기 때문이다.오늘날의 국제관계는 미국의 국무장관이 자국 농산물 판매에 신경 쓰는 것처럼 국익지상주의가 판을 친다. 이런 맥락에서 외교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안보나 경제의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600만 명이 넘는 동포가 전세계에 분포돼 있는 현실도 우리에게 새삼 외교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오늘날 세계화로 인해 국제문제는 다양화되고 범세계적 이슈로 확산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려면 외교조직은 탄력적이어야 한다. 모든 부서가 1장관, 1차관제라고 해서 외교부까지 이런 틀에 꿰 맞춘 행정의 획일성은 그래서 혁파돼야 마땅하다.

반기문 외교장관이 최근 요르단과 사우디, 이집트 등 중동 3개국을 방문했다. 이라크 추가파병에 앞서 이들 지도국에게 이해를 구하기 위해서다. 이들의 반응 여부는 차치하고 이들과의 관계를 살펴보면 우리외교의 현주소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외교는 몸으로 부딪치는 게 상책이다. 정상이나 외교수장들이 무시로 이해관계국을 찾는 것은 이 때문이다. 1962년 수교한 요르단에 외교장관으로는 반 장관이 첫 방문이라고 한다.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통해 세계 석유시장을 쥐락펴락하는 사우디에도 1979년 박동진 장관이 찾은 이래 25년 만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 중동외교가 제대로 되길 기대할 수 있겠는가.

대다수 선진국들은 외교조직만큼은 복수의 지휘부를 두고 있다. 다양한 현안에 효율적 대응을 위해서다. 사례를 보자. 미국은 장관 밑에 부장관 1명, 차관 6명에 차관보가 23명이다. 캐나다는 두 장관에 차관 2명, 차관보가 10명, 독일은 차관 4명에 차관보 10명이다. 일본도 차관 5명에 차관보 2명, 러시아는 차관이 15명이다. 북한도 부상(외무차관)이 9명이나 된다.

반면 장·차관, 차관보가 각 1명 뿐인 우리의 경우엔 효율적 업무란 기대 밖이다. 각종 국제회의에 종종 낮은 직급의 대표를 파견(under-represent), 응당 받을 대우를 못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반 장관의 중동방문에서 본 바와 같이 유럽국은 물론 중남미, 아프리카 국에 장·차관 등 고위직 인사의 방문외교는 언감생심이다.

지휘부만 부족한 게 아니다. 1998년 통상교섭본부가 합치기 직전 구 외무부 직원은 1,579명이었다. 30여명이 합친 현재의 인원은 1,533명이다. 모범적인 구조조정 결과라 할 지 모르나 외교수요의 폭증 사실을 감안하면 터무니없다. 인구별 외교인력 비율은 더욱 한심하다. 일본이 1억2천만에 5,400명이다. 1,600만인 네덜란드는 3,000명, 700만인 스위스가 3,100명, 530만인 덴마크 1,700명, 453만 명인 노르웨이는 1,200명이 넘는다.

이 지경에까지 이른 1차적 책임은 자구노력을 게을리한 외교부에 있다. 다행히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가 외교부 조직에 대해 전반적인 진단과 이에 따른 처방을 곧 내놓으리라 한다. 위원회가 외교업무의 비효율적 요소를 제거한 후 적정수준의 조직과 인원을 확충하리라 본다.

지난해 외교부는 기강해이와 무사안일, 부패의 온상으로 매도됐고 급기야는 장관이 경질되는 수난을 겪었다. 다시 심기일전할 때다. 예컨대 괜한 '밥장사'오해 받기 싫다고 관저행사를 외면하는 등의 수동적인 자세부터 버려야 한다. 접시를 닦다가 깨는 실수는 용서 받을 수 있지만 깨는 게 두려워 닦는 일을 주저한다면 이런 복지부동이 더 큰 문제가 아니겠는가.

노 진 환 주필 jhr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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