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을 타고 아시아인들이 몰려옵니다. 삼천리 금수강산, 한국을 보고 느끼고 즐기려는 관광객들입니다.아시아인들의 한국 알기, 이른바 ‘한류(韓流) 열풍’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최근 이들이 몰려오는 관광명소를 들러본 사람이라면 마치 ‘한류 열병’이 번져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다양한 국적과 피부와 언어를 가진 사람들이 우리의 풍물을 구경하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것을 보면 가슴 뭉클한 감흥도 받게 됩니다. ‘우리가 이 정도로 컸다니….’ 한류 열풍을 다시 봐야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주역은 드라마, 영화, 대중음악 등 엔터테인먼트 분야입니다. 비주얼하고 감각적이며 화려한 한국의 대중매체가 비슷한 정서를 가진 아시아인들을 매혹시켰습니다. 드라마속 그 자리에서, 그 주인공들의 감성을 나누려는 외국인들이 줄을 섭니다.
이런 사례는 외국에서는 이미 낯설지 않습니다. 이탈리아 로마의 스페인광장에는 영화 ‘로마의 휴일(53년작)’의 여주인공 오드리 헵번의 청순한 모습을 기억해내기 위한 관광객으로 발 디딜 틈이 없다고 합니다.
영화 ‘빠삐용(73년작)’의 마지막 장면을 촬영한 호주 시드니 인근의 절벽 갭팍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영화의 유명세에 힘입어 인기 관광지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심지어 이 곳과 모습이 비슷한 절벽이 있는 동남아 몇몇 관광지에서는 자기네 절벽이 빠삐용 촬영지라고 우겨대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지고 있지요. 영상매체의 힘을 빌어 관광지를 팔아보자는 상술을 생각하면 다소 씁쓸하지만 그렇다고 밉지는 않습니다.
우리라고 이들보다 못할 이유는 없지 않을까요. ‘가을동화’‘겨울연가’ 등 드라마 촬영지는 이제 아시아의 명소가 됐습니다. 한국관광에서 반드시 들러야 하는 필수코스가 된 것이죠. 외국 관광객들이 눈으로 보고 가는 한국은 백마디 외교적 언사보다 훨씬 감동적일 수 있습니다. 물론 한류 열풍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도 있습니다.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까, 잠시 지나가는 바람이겠지 등등.
하지만 지금은 이런 걱정을 할 때가 아닙니다. 한국을 아시아, 아니 세계적인 관광대국으로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는 다시 없는 기회입니다. 봄바람을 타고 확산되고 있는 한류 열풍. 그 현주소를 돌아보면 기쁜 마음으로 그들을 맞이합시다.
"Welcome To Korea."
/한창만기자 cmhan@hk.co.kr
/사진=원유헌기자
■ '한류열풍' 관리 어떻게 하나
햇빛이 있으면 그늘이 있는 법. 쉴 새 없이 몰아치는 강렬한 한류열풍은 언제까지 갈까. 드라마와 대중음악이 주도하는 이 열풍의 수명에 대한 여러 분석과 함께 “한류열풍을 잘 관리하지 않으면 오히려 한국 이미지를 흐릴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않다.
현재 열풍의 강도가 가장 거센 지역은 대만. 하지만 한국관광공사가 최근 대만인 300여명을 대상으로 ‘한국대중문화의 향후전망’를 물었더니 24.6%가 ‘일시적인 유행으로 2~3년내에 사라질 것’이라고 답했다. 또 ‘한국의 대중문화가 대만 사회에 미치는 정도’도 홍콩 미국 일본의 문화에 비해 뒤쳐지는 것으로 드러났다.
드라마의 유행에 따라 한류관광지를 찾는 외국인 방문객수가 큰 차이를 보인다는 것도 문제다. 겨울연가 촬영지로 가장 많은 외국인이 찾고 있는 남이섬의 경우 2002년 상반기에 드라마가 대만에서 방영된 이후 지금까지 13만여명이 다녀간 것으로 집계됐다. 반면 아직 드라마가 소개되지 않은 홍콩과 중국관광객은 전무한 실정이다. 일본관광객도 지난 해 NHK 케이블방송을 통해 방영되면서부터 몰려들기 시작했다.
남이섬주식회사 민경혁 기획홍보팀장은 “드라마열기로만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는 것은 분명 한계가 있다”며 “섬 전체를 수시로 리노베이션과정을 거쳐 일과성 관광지로 끝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선 “한류현상이 10대 중심의 일부계층의 문화만을 반영할 뿐, 한국문화를 제대로 수용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많다. 드라마의 자극적이고 엽기적인 부분만 강조되다 보니 한국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심어줄 우려가 크다는 것.
한양대 국제관광대학원 손대현(59) 원장은 “외국인들이 드라마를 보고 한국까지 찾아왔을 때는 기대가 매우 큰데 막상 드라마와 현실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실망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며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보다 체계적인 마케팅정책이 필요하다”고 제기했다.
/한창만기자
■예정된 한류 행사
1월27일 중국 청소년 70여명이 댄스그룹 NRG를 만나기 위해 3박4일 일정으로 한국을 찾았다. 팬미팅은 물론 NRG멤버의 모교 방문, 녹화현장 견학에 멤버였던 고 김성환 군의 묘지 참배까지 이어졌다.
일본 위성TV BS2에서 드라마 ‘아름다운 날들’이 큰 인기를 얻으면서 주인공 이병헌을 대상으로 한 상품도 출시됐다. 2월 5~6일 열린 행사에는 일본팬 400명이 한국을 찾아 이병헌과 팬미팅을 갖고 촬영 현장을 견학했다.
이 같은 바람을 이어 3월5일 서울 힐튼호텔 컨벤션 센터에서는 한류관광 마케팅의 본격적인 출범을 알리는 ‘코리안 웨이브 2004’ 행사가 열린다. 최지우 송승헌 손예진 장서희 강타 등 한류스타 20여명이 함께하고 앙드레김이 화려한 패션쇼를 펼친다. 북경TV, 상해TV 등 외신기자단도 대거 참석할 예정
또 3월13일 원빈, 3월19일에는 탤런트 박용하와 윤석호 PD 등이 함께하는 ‘겨울연가 드래곤밸리 스페셜 투어’가 잡혀있다. 모두 일본인이며 500~600명이 ‘꿈에 그리던’ 스타를 찾아 한국을 방문한다.
이런 와중에서 연예인을 내세운 한류 상품이 무리하게 추진돼 물의를 빚기도 했다. 1월 15~16일 열렸던 ‘최지우 일본팬미팅 상품’은 최지우 소속사의 동의를 얻지 않은 채 진행돼 사기 투어란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전화위복이랄까. 사기투어가 일본 매스컴에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오히려 최지우의 주가는 더욱 치솟았고 3월20일 일본팬과 최지우가 만나는 투어가 열린다.
/김신영기자 ddalgi@hk.co.kr
■新한류, 이젠 일본이 설렌다
한류열풍의 업그레이드! 1990년대 중국을 중심으로 불기 시작한 한국 드라마와 대중음악에 대한 관심이 아시아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유명드라마 촬영지가 외국인들이 선호하는 관광명소로 자리잡고, 한국의 연예인들을 직접 보려는 마니아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또 드라마와 음악을 즐기는 차원에서 벗어나 게임, 패션, 한국음식, 한국상품 등 한국관련 문화와 상품 전반에 대한 관심도 뜨겁다. 일각에서는 국내외서 불고 있는 이 같은 현상을 ‘신한류(新韓流)’로 지칭하고 기존의 한류와 차별화하고 있다.
한 순간의 유행 같았던 한류현상이 이처럼 다변화하면서 관광산업의 패턴과 판도까지 바뀌고 있다. 한국관광공사는 올해를 본격적인 한류관광 마케팅의 원년으로 정하고 유명 한류스타를 대거 동원해 사스, 조류독감 등으로 주춤하고 있는 한국관광에 활력소를 불어넣기로 했다. 한류가 태동하고 성장해온 과정을 되짚어 한류의 미래를 가늠해본다.
태동부터 현재까지
한류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99년 중국의 언론매체를 통해서지만 그 이전에도 한국 대중문화가 중국에 유입돼 적지 않은 인기를 얻고 있었다.
한국관광공사 중국부 박정하과장은 “80년대 중반 조용필의 ‘친구여’를 알란 탐이 번안해 노래하고 88서울올림픽 주제가인 ‘손에 손잡고’ 등도 알려지면서 한국문화가 뜨기 시작했다”며 “93년 드라마 ‘질투’와 ‘여명의 눈동자’ 등이 방영되면서 한국드라마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특히 ‘사랑이 뭐길래(97년)’는 당시 중국내에 방영된 외국드라마 사상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했다”고 설명한다. 이 시기에 한국음악을 전문으로 소개하는 라디오방송 ‘서울음악실’도 탄생, 본격적인 한류열풍을 예고했다는 것이다.
98년 드라마 ‘별은 내 가슴에’‘해바라기’‘안녕 내 사랑’ 등 탤런트 안재욱이 출연한 드라마들이 잇따라 중국에서 전파를 타면서 안재욱은 중국 한류를 이끄는 대표주자로 자리잡았다.
중국에 이어 대만에서 한류열풍을 주도한 이는 클론이다. 99년 당시 일본 음악에 비해 손색이 없는, 세련되고 역동적인 춤이 대만의 젊은이들을 매료시켰던 것. 박 과장은 “‘토마토’‘미스터Q’‘웨딩드레스’ 등 한국의 트렌디 드라마(trendy drama)들이 케이블방송을 타고 대만에 방영되면서 당시 국교단절 등으로 야기된 한국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바꾸는 데 큰 기여를 했다”고 말한다.
2000년 2월 북경에서 열린 HOT콘서트를 계기로 NRG, SES, 베이비복스, 신화 등 가수들이 대거 진출, 한국인 가수들의 전성시대를 맞는다.
국가별 선호도 달라
한류현상이 각 나라별로도 다른 양상을 띠며 발전하고 있다는 점도 재미있다. 한류라는 용어가 생기기 이전부터 한국에 대한 선호도가 강했던 베트남은 한국 드라마를 통해 신비로운 세상을 접했던 탓인지 지금도 한국의 옷과 가방 등 한국패션을 좇는 층이 두텁다.
대만에서도 케이블 방송이 경쟁적으로 한국 드라마를 소개하고 있다. 지금도 ‘요조숙녀’‘상도’‘명성황후’ 등 한국의 드라마를 쉽게 볼 수 있다. 반면 한국의 대중가요는 대부분 대만가수들이 번안해서 부르기 때문에 한국 가수의 지명도는 상대적으로 낮다. 홍콩도 대만과 유사한 성향을 보이고 있다.
이에 비해 중국은 한국 가수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 상대적으로 드라마의 개방이 더뎌서 생겨난 현상이다.
러시아는 연예사업보다는 한국의 자동차와 가전제품 등 경제한류가 자리잡은 케이스. 대우의 넥시아는 러시아의 국민차가 됐고, 삼성 휴대폰은 휴대폰을 통칭하는 고유명사화한지 오래. 이 현상이 한국문화와 한국어에 대한 관심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뒤늦게 일본까지 한류에 가세하고 있다. 마니아의 왕국답게 일본은 겨울연가와 가을동화의 주인공인 배용준, 원빈 등 연예인 따라잡기에 열성이다.
한국관광공사 박병직 교류협력팀장은 “소비성향이 높은 일본이 한류열풍에 동참했다는 사실은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라며 “이를 계기로 한ㆍ일간의 교류도 활발해지면 멀고도 가까운 두 나라가 더욱 가까워질 수 있어 정부 차원의 한류열기를 이어가기 위한 여러 대책을 마련 중”이라고 말했다.
/한창만기자 cmhan@hk.co.kr
■드라마 '겨울연가' 日관광단 동행취재
중국, 대만, 동남아 등 아시아 곳곳에 불고 있는 ‘한류(韓流)열풍’에 한동안 시큰둥했던 일본인들이 최근 마음의 빗장을 풀고 태도를 바꿨다. 드라마 ‘겨울연가(일본제목 Winter Sonata)’가 지난해 4월 일본 NHK 위성채널로 방송돼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면서부터다.
NHK측은 지난 해 12월 같은 채널로 이 드라마를 재방송한데 이어 올 4월부터는 공중파를 통해 재차 재방송하기로 결정했다. 더불어 드라마 ‘아름다운 날들’, ‘가을동화’ 등도 일본에서 동반히트하며 이병헌, 원빈 등 주연배우의 인기가 급상승하는 등 봄바람을 타고 본격적인 한류열풍이 불어닥칠 조짐이다.
한 현상에 집중하고 열광하는 이른바‘마니아’가 유독 일본에 많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 때문에 이들의 뒤늦게 한류열풍은 단순한 ‘드라마 따라잡기’를 넘어서 드라마촬영지 방문과 주인공 패션 연구로 이어지고 있다. 또 한국어와 한국음식 배우기 열풍이 불면서‘한국을 다시 보고 알자’는 분위기까지 생겨나는 등 이들이 일으키는 현상은 엄청난 후폭풍을 일으킬 것으로 기대된다. 최근 ‘겨울연가’ 촬영지를 찾은 일본인 관광객을 따라 그들의 한류열기를 들여다봤다.
18일 오후 1시30분 인천국제공항 입국장. 20명의 일본인들이 입국수속을 끝내자마자 곧바로 입국장 한켠에 마련된 광고판 앞으로 몰려가더니 이내 아쉬운 탄식을 자아낸다.
일본 도쿄에서 온 관광객 다카코(38ㆍ여)씨는 “지난 해 12월에 한국을 찾았을 때만 해도 휴대폰 광고모델인 배용준의 사진이 있었는데 지금은 다른 모델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며 “한국 드라마 겨울연가 팬들이라면 배용준의 일거수일투족 정도는 기본적으로 꿰뚫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해 배용준 팬사인회에 참석하면서 친해진 네그미(40ㆍ여)씨와 동행했다. 이들은 최근 만들어진 배용준 팬클럽 ‘Hot & Cool’ 회원이기도 하다.
이날 여행에 참가한 사람 중 20편짜리 겨울연가 비디오를 가장 적게 본 횟수가 15번이란다. 30번 이상 본 관광객도 5명이 넘는다. 한가지 특징은 일행 대부분이 30~60대 아주머니들이라는 점. 20대 후반의 여자들이 일부 있지만 모두 겨울연가를 좋아하는 어머니의 성화에 못 이겨 따라온 딸들이다.
유일한 남자이면서 가장 나이가 많은 미츠모토(78)씨는 이번 한국 방문이 71번째. 그는 “이전에는 그냥 한국이 좋아서 왔는데 이번에는 최지우의 숨결을 느끼고 싶어서 왔다”며 허허 웃는다. 빡빡한 일정을 무리없이 소화해낼 수 있는 것도 ‘겨울연가’의 감동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란다.
한국인 가이드와 만난 이들은 공항밖에 준비해둔 버스를 타고 서울 청량리역으로 향했다. 목적지는 겨울연가의 촬영지인 남이섬. 청량리역에서 기차를 이용, 가평까지 간 뒤 다시 버스를 타고 남이섬 선착장에 도착한다. 섬에 도착한 이들은 연신 탄성을 질러댄다. TV화면을 통해 본 장면들이 눈앞에 펼쳐질 때의 감동, 바로 그 것이다.
곳곳에 남아있는 드라마 주인공 준상(배용준)과 유진(최지우)의 사진을 배경으로 사진촬영에 여념이 없다. 주인공들이 사랑을 키운 주무대인 메타세콰이어길에 들어서자 이내 숨이 멎는다. 배경음악으로 사용된 프란시스 레이의 ‘하얀 연인들’도 들리지 않고, 산책로 가득 쌓였던 흰 눈도 사라졌지만 이들은 드라마의 주인공이 된 듯 온갖 포즈를 취한다. 얼굴에 살랑대는 봄바람은 그저 조연일 뿐이다.
왜 겨울연가에 열광하냐는 질문에 그들은 한결같이‘순수함’때문이라고 답한다.“최근 일본 드라마는 10~20대 위주로 만들어져 정신이 없을 정도로 스토리 전개가 빠른데다 불륜관계가 과도하게 설정돼 보기 민망하다”는 야마시타(60ㆍ여)씨는 “겨울연가를 비롯한 한국 드라마들은 이해가 쉬운데다, 해맑은 주인공의 사랑이야기가 너무도 순수해 중ㆍ장년층 일본인 정서에 어필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여행은 올해로 40년 가까운 직장생활을 접고 정년퇴직하는 그에게 딸(30)이 은퇴 기념 선물로 동반여행을 제안하면서 이뤄졌다.
짧고도 아쉬운 남이섬 여행을 마치고 이들은 춘천으로 향한다. 춘천 역시 겨울연가의 흔적이 곳곳에 배어있다. 중도유원지는 준상과 유진이 자주 데이트하던 곳이고, 춘천역은 이들의 만남이 어긋나면서 보는 이들의 눈시울을 적시게 했던 곳이다. 특히 명동은 준상이 유진을 만나기 위해 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기억을 잃는 운명의 장소. 사랑하는 사람이 병원에 실려간 사실도 모른 채 하염없이 기다림에 빠져있던 유진을 떠올리며 이들은 드라마속으로 빠져들었다.
춘천에서 1박을 한 이들의 다음 여행지는 강원 평창군 도암면 용평리조트. 남이섬과 함께 이미 대표적인 겨울연가 관광지로 각광받는 곳이다. 유진과 준상이 자주 들른 카페 ‘처음’에서 차 한잔을 한 뒤 곤돌라를 타고 발왕산 정상에 올라 완연한 봄 기운속에 사라져가는 눈구경에 취해본다.
용평에서 하루를 묵은 뒤 다음 목적지는 서울. 동대문시장과 면세점 쇼핑으로 간단하게 하루를 마치고 아쉬운 마지막 날을 맞았다.
서울 종로구 계동 중앙고가 마지막 일정. 학교건물이 아름다워 사적 281호로 등록돼있는 이 곳은 준상과 유진의 고교시절을 촬영한 곳이다. 학교 강당과 교정을 둘러본 이들은 학교앞 유진의 집에서 마지막 기념사진을 찍고 명동의 한 음반매장에서 쇼핑으로 마무리했다.
관광객 아케미(59)씨는 “배용준이 너무 좋아 그가 나온 모든 영화와 드라마 DVD를 구입했다”며“자막이나 더빙이 되지 않은 한국판 겨울연가를 보기 위해 최근 한국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5년전 남편과 사별하고 죽는 날만 기다리던 70대 할머니가 ‘겨울연가를 보고 생활의 활력을 찾고 한국을 방문했다’는 말을 듣고 눈시울을 적신 적이 있다”는 가이드 민인숙씨는 “일본인들이 한국 드라마를 통해 한국에 대한 인식을 달리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일본에 부는 한류는 긍정적인 것”이라고 분석했다.
/글=한창만기자 cmhan@hk.co.kr
/사진=원유헌기자 youhoney@hk.co.kr
■한국 관광지도가 바뀐다
‘한류열풍’이 외국인들이 휴대한 대한민국 관광지도를 바꿨다. 경복궁, 창덕궁, 경주, 한국민속촌 등 전통적인 관광지는 갈수록 빛을 잃고, 속칭 대박 드라마의 촬영장소가 한국을 알리는 대표적 명소로 뜨고 있다.
사람들은 당초 이런 현상을 한때의 유행이나 일시적 경향으로 여겼다. 하지만 이들 드라마가 아시아 곳곳에서 시차를 두고 연이어 방영되면서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의 우선적 관심은 이들 명소에서 드라마속 주인공의 감성에 함께 젖어보는 것이 됐다.
현재 외국인들이 가장 즐겨찾는 관광지는 ‘겨울연가’ 촬영지인 남이섬과 용평. 남이섬은 2002년 초 일치감치 겨울연가를 수입ㆍ방영한 대만에서 관광객들이 찾아오기 시작,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2003년 12월 한달간 한국을 찾은 대만인 2만2,080명 중 절반에 가까운 9,000여명이 남이섬을 찾았을 정도이다. 특히 지난 해 일본,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에서도 이 드라마가 방영되면서 지금 남이섬은 다양한 인종이 오가는 다국적 섬으로 변했다. 지난 해 9월까지 한명도 없던 일본인도 최근 넉달동안 4,000명이나 찾았다.
국내 최대 스키장인 용평리조트에도 평소 눈을 볼 수 없는 동남아 관광객들과 겨울연가 촬영장을 보려는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다.
드라마 ‘가을동화’때는 주인공 태석(원빈)과 은서(송혜교)가 근무하던 평창 피닉스파크, 속초의 ‘아바이마을’, 양양 ‘상운폐교’, 화진포 해수욕장, 대관령삼양목장 등에 외국인들의 방문이 급증했고 지금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접근성이 떨어져 외국인에게는 다소 소외돼온 관광지에 대한 방문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동남아일대에서 방영중인 드라마 ‘올인’의 성공에 힘입어 드라마 촬영지인 제주를 방문하려는 외국인의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 또 겨울연가 마지막 촬영지인 경남 거제시 ‘외도’를 방문하는 여행상품도 올해 중에 마련될 계획이다.
/한창만기자 cmhan@hk.co.kr
■한류관련 용어
◆ 한류(韓流ㆍ한리우)
한류란 말은 1999년 여름 중국 언론매체에서 처음 쓴 말이다. 중국과 동남아지역에 일고 있는 한국 대중문화 열풍을 가리키는 말이다. 무더운 여름, 다른 문화가 매섭게 불어닥친다는 의미인 한류(寒流)의 동음이의어로 한류(韓流)를 쓴 것이 시초이다.
◆ 신한류(新韓流ㆍ신한리우)
외국 현지에서 불고 있는 한류열풍을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해 관광, 쇼핑, 패션 등 연관산업분야에서 실질적인 성과를 창출해내는 것을 말한다. 외국인들이 한국의 관광지와 연예인을 찾는 것이 아니라 국내 정부차원에서 외국인들이 한국을 찾게 하는 다양한 프로모션을 기획하는 것을 포함한다.
◆ 합한족(哈韓族ㆍ하한쭈)
한류열풍을 타고 형성된 ‘한국팬 집단’을 이르는 말로 대만에서 나온 용어다. 이들은 한국의 음악과 춤을 따라 부르고 즐기며 한국풍을 따라하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 10여년전 대만에서 일본풍이 휩쓸었을 때 이들을 합일족이라 부른데서 유래한다. 하지만 맹목적인 한국문화를 숭상하는 데 대한 비판적인 의미도 담겨있다.
◆ 한미(韓迷ㆍ한미)
미(迷)는 마니아를 뜻하는 말. 球迷(열성 야구팬), 歌迷(열성 음악팬) 등이 널리 사용되는데, 한미는 한국 문화에 깊이 빠져있는 팬을 뜻한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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