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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이야기/샤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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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이야기/샤넬

입력
2004.02.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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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엔 샤넬향수 No.5만 걸치고 자요."미국의 '섹스심벌'로 통했던 영화배우 마릴린 먼로가 기자들 앞에서 한 말이다. 샤넬(로고)은 마릴린 먼로만 옷에서 해방시킨 건 아니다. 1910년 프랑스 파리 캉봉 거리에 샤넬의 시초인 '메종 샤넬'을 연 이후 가브리엘 샤넬은 그녀가 원했건, 원하지 않았건 여성 해방의 혁명적 페미니스트가 되었다. 당시 파리에는 땅 먼지를 끌고 다니던 긴 치마 '트레인'이나 무릎 부분 통이 좁아 걷기가 불편했던 '허블 스커트'가 유행했다.

샤넬은 무릎을 살짝 덮는 '샤넬 라인'의 짧은 치마로 여성들의 걸음걸이를 해방시켰다. 남성들의 속옷감에나 쓰이던 저지천을 이용해 스커트에 주름을 넣음으로써 여성들도 다리를 꼬고 앉을 수 있게 했다. 또 긁히지 않게 겉면을 누비고 황금고리로 된 끈을 달아 어깨에 멜 수 있게 한 '2.55' 퀼팅숄더백은 여성들이 남성들과 똑같이 두 손으로 일할 수 있게 했다.

향수, 핸드백, 액세서리까지 여성의 아름다움을 위한 '토털 룩'이라는 최초의 평가를 받은 샤넬. 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샤넬의 매력은 실용성을 강조한 여성 슈트(사진)에 있다. 톡톡하고 거친듯한 트위드(tweed) 소재, 말갈퀴 같은 옷 마감선, 있어야 할 곳에 반드시 있는 포켓 등의 특징은 남성복에서 착안한 것이지만 여성을 더욱 여성스럽게 보이게 한다는 평을 받고 있다. 가브리엘 샤넬 사후 83년 수석 디자이너가 된 칼 라거펠트에 의해 샤넬의 독창성은 계승되고 있다.

가브리엘 샤넬의 천재성에 대해 그녀"가 자라났던 수녀원 생활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것은 너무 편협하다. 물랭이라는 도시의 술집에서 '코코'라는 애칭으로 불린 이후 그녀를 거쳐간 에티엔느 발장, 보이 카펠, 디미트리 파블로비치 러시아 대공, 영국 웨스트민스터 공" 등 부귀한 귀족 남성이 없었다면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은 소녀가 '20세기의 디자이너'로 남기는 대단히 어려웠을 것이다.

/신기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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