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이태 전 일이지만, 소설가 이문열씨는 시민운동 단체들을 홍위병이라고 몰아쳤던 자신에게 항의해 그의 책 반환운동을 펼친 부산의 한 사진가에게 '당신 전라도지?'라고 다그친 바 있다. 기자는 그 사건을 살핀 한 칼럼에서, 이씨가 그 동안 되풀이 보여준 엽기적 언행을 생각하면 그의 '전라도' 발언이 놀랄 일도 아니라는 점을 지적했다. 그리고 정작 놀라운 것은 그의 양식 있는 문단 동료들이 그의 반사회적 발언에 침묵하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기자는 그 때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이씨에게서 아무런 시민적 양식도 기대하지 않는다. 그래서 최근 그의 산문집 발간에 즈음해 신문 지면 위에 흩날렸던 그의 발언들을 읽으면서도 윤리적 감수성이 발동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곰곰 생각하면 주관적 윤리의 수준에서 이씨의 바탕이 별나게 무르다고 단정할 이유도 없다. 그가 정부와 개혁 진영에 험담의 팔매질을 해대는 것도 그 나름의 애국심, 구국의 일념에 바탕을 둔 것일 테니 말이다.
사실, 애국심과는 아무런 인연이 없이 살아온 기자는 이씨의 나라 사랑 앞에서 외려 옷깃이라도 여미며 부끄러워해야 할 처지다. 심미적 수준에서도, 그에게 '부름'을 내렸다는 '한국 보수세력'의 눈에는 그의 악담과 선동이 아름답게까지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윤리나 심미와 무관한 '순수이성'의 수준에서, 이씨의 자기 인식에 중대한 착오가 있다는 지적은 해야겠다. 한 석간 신문을 보니, 이씨는 이른바 '개혁'이나 '진보' 쪽에 궁둥이를 걸친 인텔리들에게 '하류 지식인'이라는 판정을 내린 모양이다. '하류'니 '상류'니 하는 말이 그 자체로 천하기는 하지만, 그의 판단이 옳을 수도 있다는 것을 기자는 기꺼이 인정한다. 그러나 한 가지만 짚자. 그가 자신이 비판하고 있는 대상에게 '하류 지식인'이라는 딱지를 붙였다면, 그 발언은 적어도 자신은 '하류 지식인'이 아니라는 인식을 깔고 있을 것이고, 적극적으로는 자신이 '상류' 지식인이라는 인식을 깔고 있을 것이다.
이 대목에서 기자는 이씨에게 동의할 수 없다. 이씨는 무슨 근거로 자신이 '하류 지식인'이 아니라고, '상류 지식인'이라고 판단하는가? 그가 다녔다는 대학이 '상류' 대학이고 몇몇 '상류 지식인'을 배출했기 때문에?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 시대의 '국민 작가'가 모교의 명성이나 몇몇 뛰어난 동문의 이름에 기대 자신의 '상류 지식인' 됨을 확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책을 수천만 부나 팔았기 때문에? 그러나 이것도 석연치 않다. 그의 눈부신 책 판매량은 그가 재주 있는 대중 작가라는 증거는 될 수 있어도 그가 '상류 지식인'이라는 증거는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이씨는 우리 시대 최고의 대중 작가고, 그가 지닌 문화 권력의 대부분은 그의 이런 대중성에서 온 것이다. 그의 들큼한 문장에 녹아 난 수백만의 '천둥벌거숭이들'(이들은 이씨가 애호하는 또 다른 전문용어로는 '홍위병'이다)이 그의 정치적 후견인이 되고 있다.
소설가 장정일씨는 이씨의 행태를 비판적으로 살핀 한 칼럼(문화일보 2월16일자)에서 그를 '엘리트'라고 규정하고 있지만, 그 '엘리트'라는 말이 '엘리트 문학의 생산자'라는 뜻이라면 기자는 그것이 터무니없는 규정이라고 생각한다. 독자들에게 일정한 심미적 훈련을 사전에 요구하는 문학이 엘리트 문학이라면, 외려 장정일 문학이 이문열 문학보다 '엘리트 문학'에 근접해 있다.
대중 작가로서의 이씨의 재능은 그를 '상류사회'의 일원으로 만든 대신, 그가 '상류 지식인'이 되는 것을 방해한 것 같다. 이문열씨! 자신에 대한 비판을 지역주의의 틀로밖에 이해하지 못하는 당신이 바로 하류 지식인이다. 제 소설의 대중적 인기를 정치 선동의 엔진으로 삼으며 '헤헤거리는' 당신이 바로 포퓰리스트다.
고 종 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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