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정웅 연출의 '환'(3월19∼26일)은 빛과 소리의 역동성을 앞세운 아시아형 '맥베스'다. LG 아트센터가 '오늘의 젊은 연극인 시리즈'로 내보내는 첫 번째 작품. 양정웅(36)은 인류의 통과의례를 상징적으로 다룬 '연(緣)―카르마'로 카이로 국제실험연극제 대상을 수상한 개성 있는 연출가다.양정웅이 극단 여행자와 중견 연기자를 불러 모아 만드는 '환'은 연습장면만으로도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설정부터 흥미롭다. 사촌의 손에 시해될 운명인 덩컨왕(해왕)이 게이(장영남)이며, 자기를 죽일 맥베스(진 장군·정해균)를 사랑한다는 새로운 해석은 익히 알려진 '맥베스'가 내장하고 있는 강력한 흡인력을 한층 강화한다. 그리고 '햄릿'에서 주연들 못지않게 중요한 역할을 하는 광대(정규수)가 등장해 남성적이며 거칠고 굵은 '맥베스'의 줄거리에 탄력을 더한다. 품바 출신의 정규수는 특유의 너스레와 즉흥연기로 맥베스의 주제를 전했다.
이미지와 소리를 내세운 '환'의 수법은 일본 구로자와 아키라의 영화 '맥베스(피의 왕관)'에 나오는 독특한 배우의 움직임과, 프랑스 태양극단이 '제방의 북소리' 등에서 보여준 환상적인 무대 연출을 연상케 했다. 여기에 스페인 다국적 극단 라센칸 출신인 양정웅씨의 모더니스트적 면모를 엿볼 수 있는 미니멀한 무대와 국적불명의 이미지가 관심을 자아낸다.
이미지 연극이라는 특성을 내세우는 극단 여행자와 정규수 최일화 장영남 등 중견연기자들은 떠들썩하게 어우러지는 잔치장면으로 막을 연다. "유주강산이 금주강산이요, 무주강산이 적막강산"이라며 노는 모습은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오태석의 한국적 호흡과 이윤택식 놀이판을 모던하게 계승하는 몸짓이 느껴진다. 이런 활기참은 이 극의 압권이라 할만한 왕 시해 장면과 극적으로 대비되어 나온다. 붉은 천으로 휘감은 목욕통. 마약에 취한 해왕이 "인생 일장춘몽이오"라 며 그윽한 눈길을 사촌 진 장군에게 보내면 진 장군은 "사내면 사내다워야지"라며 단도로 사촌동생을 찌른다. 국악과 양악을 뒤섞은 퓨전 음악, 힘차고 긴장감 넘치는 코러스와 군무는 색다른 '맥베스'를 예감하게 한다. 이런 양식적인 아름다움이 관객에게 뚜렷하게 다가선다면 또 하나의 독특한 '맥베스'가 탄생할 것이다. /이종도기자 ecr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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