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이 터무니 없는 안을 고집했다"(한나라당 홍사덕 총무) "야당이 무리하게 지역구 증원을 요구했다."(열린우리당 김근태 원내대표)24일 회담에서 의원정수 합의에 실패한 뒤 여야 총무는 하나같이 상대방을 탓했다. 역대 국회 중 가장 뒤늦게 선거법을 처리했다는 책임을 떠안고 싶지 않은 얄팍한 정치 계산 때문이었음은 물론이다.
더욱 가관은 여야가 은근 슬쩍 지역구 의원수를 최소 15석 늘리기로 담합한 것이다. 지역구 의원수 227명 동결안(여당)과 15석 증가안(야당)을 놓고 표결하기로 했지만 야당 의석이 과반을 넘어 15석 증가안이 채택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던 셈이다.
여야는 당초 정개특위 협상에서 의원정수를 현재의 273명으로 동결하는 데 합의하는 듯 했다. 그러다 불쑥 여성전용선거구제를 들고 나오더니 역풍이 일자 슬그머니 273명의 둑을 터버렸다. 이 때부터 각 당의 잔꾀 부리기 경쟁이 시작됐다.
민주당은 텃밭인 전남의 지역구를 지켜내기 위해 지역구 14석 이상 증가안을 들고 나왔다. 한나라당도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식으로 민주당 편에 섰다. 우리당은 지역구수 동결을 내세우면서도 "지역구 13석, 비례대표 13석을 늘려 299석으로 하는 것도 괜찮다"고 슬쩍 속내를 드러냈다. 정당 지지도가 1등인 우리당 입장에서 비례대표는 놔두고 지역구만 늘리는 건 분명히 '손해 보는 장사'다.
여야가 곧 처리할 정치개혁 법안들은 너무 앞서 나갔다는 평이 나올 정도로 분명히 발전적이고 개혁적이다. 그러나 결국 제 밥그릇 늘리기로 마침표를 찍으려는 정치권의 행태를 보면서 "법만 잘 만들면 뭐하나"라는 개탄이 다시 절로 나온다.
정녹용 정치부 기자 ltre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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