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02년 9월 터키를 방문해 한국전쟁 참전 용사들에게 뒤늦은 감사와 위로의 인사를 드릴 기회를 갖게 됐다. 터키에서는 한국전 참전 용사를 '코레 가지'라고 부른다. 가지라는 말은 용감한 군인을 뜻한다.터키는 한국전쟁에 미국, 영국 다음으로 많은 1만5,000여 병력을 파견하여 3,200여 젊은이가 전사, 실종 또는 부상했다. 부산 유엔묘지에는 고국으로 미처 모시지 못한 터키 장병 유해 462기가 안장돼 있다.
50여년 전 지구 저쪽에서 와서 대한민국을 위해 몸을 바친 분들과 그 아들 딸들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재작년 나는 해외한방의료봉사단의 일원으로 터키 중남부 카이세리에 있는 에르지예스 대학병원에서 한의사 열두 분(한의사 대표단장 강인정)과 함께 의료봉사 활동을 하게 됐다. 나는 한의사 한 분과 함께 앙카라로 가서 네 분의 코레 가지 가정을 방문하게 되었다. 참 잘 생긴 분들이었다.
우리가 방문한 코레 가지 중에서 팔다리에 장애가 있던 분들은 침술만으로 그 자리에서 효험을 보았다. 본인은 물론, 가족들이 기뻐해 우리의 발걸음을 가볍게 하였다. 그러나 한 분은 전쟁의 상처와 당뇨 합병증 등으로 온 몸이 퉁퉁 부어 있는 상황이었다. 만나는 순간부터 한의사의 표정이 달랐다. 병이 너무 깊어 손을 쓰기 어려운 분이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보약과 준비해 간 얼마간의 위문금을 전달하며 위로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영영 뇌리를 떠나지 않는 것은 시종 그치지 않은 그의 서글픈 울음소리였다. 반가움보다는 신병으로 인한 서러움의 눈물인 것 같아 나 역시 가슴이 아팠다. 우리가 너무 늦게 왔던 것이다.
유가족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도 들었다. 한국으로 떠난 이후 다시 만나지 못한 아버지, 묘소조차 어디 있는지 모른다는 애절한 사연이었다. 귀국하자마자 자녀들이 부산 유엔묘지를 참배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첫 방문단의 일원인 피어스(52) 여사의 인사말이 가슴 찡하게 다가온다. 한국전 때 유복녀로 태어난 그녀는 이렇게 말하였다. "부산에서 맞이할 금요일(10월 24일 유엔 데이) 아침은 제겐 역사적인 순간이 될 것입니다. 이 날은 제가 아버지에게 가장 가까이 다가가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와 저는 한번 만나본 적도 없고 서로 알지도 못합니다."
알지도 보지도 못한 지구 동쪽 끝에 있는 대한민국을 위해 희생한 코레 가지와 그 유족들에게 감사 드린다. 강산이 다섯 번이나 바뀌는 긴 세월이 흘렀어도 '평앵'(평양), '개평'(가평) 등을 잊지 않고 있는, 우리보다 우리를 더 사랑하는 코레 가지와의 만남은 보훈 업무를 평생 업으로 해 온 내 삶에 소중한 기억으로 남았다.
김 종 성 국가보훈처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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