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의 제왕' 에서 황금 숲을 다스리는 로스로리엔의 여왕 갈라드리엘 역으로 나왔던 케이트 블란쳇(35)이 주연을 맡은 영화 2편이 관객을 찾아간다. 여성적 아름다움 속에서도 묘한 카리스마를 풍기는 그녀는 1998년 '엘리자베스'로 골든 글로브 여우주연상, 시카고 영화비평가협회 여우주연상 등을 수상한 호주의 실력파 배우. 이번에는 어머니이자 아일랜드 마약조직을 취재하다 살해당하는 여기자, 살인마로부터 딸을 구해내려는 여의사로 열연했다.
● 베로니카 게린
1996년 6월26일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에서 6발의 총소리가 울린다. 근교로 차를 몰고 가던 여기자 베로니카 게린이 신호대기 중 모터사이클을 탄 괴한의 총에 살해된 것이다. 조엘 슈마허 감독의 '베로니카 게린(Veronica Guerin)'은 그 시점부터 2년을 거슬러 올라가 한 여기자의 치열한 삶을 차분히 기록한 영화다. 실화다.
베로니카 게린은 귀여운 아들과 자상한 남편을 둔 평범한 여기자. 그러나 길거리의 꼬마들까지 주사기를 갖고 놀 정도로 더블린을 장악한 마약밀매 조직에 도전장을 내민다.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폭력조직은 이때부터 언론과의 전쟁을 선포한다.
영화는 다큐멘터리 같은 진행에도 불구하고 게린의 인간적인 모습을 부각시키는 데 상당한 공을 들였다. 조직의 보스로부터 무참히 두들겨 맞은 뒤 운전대가 흔들릴 정도로 벌벌 떠는 게린의 모습은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시민 그 자체다. 사후 1주일 만에 더블린에 마약퇴치 운동의 불길을 타오르게 했던 그 여기자는 결코 특별한 영웅이 아니었음을 말해주는 것일까.
그러나 영화는 아쉽게도 실화가 주는 감동 이상을 넘어서지 못했다. 사건의 재구성을 통한 막판 반전도 없고, 콜린 파렐이나 시아랜 힌즈 같은 아일랜드 출신 조연 배우들의 개성연기도 슬그머니 극에 파묻히고 만다. 다만 관객은 피투성이가 된 여기자의 모습에서 한 젊고 평범한 어머니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숙연해질 뿐이다. '의뢰인' '타임 투 킬' '배트맨 3―포에버'의 조엘 슈마허 감독은 어쩌면 이 같이 보편적 감동만을 원했는지도 모른다. 15세 관람가. 26일 개봉.
/김관명기자
● 실종
딸이 사라졌다. 꽃다운 열입곱살에 반짝이는 금발과 하얀 피부가 고운 아이였다. 아이가 사라진 자리에는 벌거벗겨진 시체만 뒹굴고 있다. 매기(케이트 블란쳇)는 사라진 딸을 찾기 위해 보안관과 기병대를 찾아가 봤지만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미칠 것 같은 심정에 할 수 없이 그가 매달린 사람은 아기때 자신을 버리고 사라진 미운 아버지 사무엘(토미 리 존스). 20년만에 백인 인디언이 돼서 돌아온 사무엘은 사건현장을 보고 단번에 범인이 사악한 인디언 페쉬치든 일당임을 알아낸다. 페쉬치든은 사람의 심장을 뽑아내 먼지 구덩이에 파묻고 나무에 뱀을 걸어놓는 주술을 사용하는 악당.
그때부터 늙은 노인과 한을 품은 여인의 추적이 시작된다. 그렇지만 악은 너무가 강하고 선은 무기력할 뿐이다. 과연 딸을 찾을 수 있을까. '랜섬'으로 아들을 유괴당한 절박한 아버지를 그렸던 론 하워드 감독이 이번에는 딸을 잃은 모성을 다룬 '실종'(The Missing)을 들고 돌아왔다. 기본 줄거리는 유괴당한 딸을 찾는 어머니 이야기지만 밑바탕에는 용서와 화합으로 다시 뭉치는 가족애가 깔려 있다.
문제는 가족애를 보여주기 위한 소품으로 잔인한 인디언, 기독교에 비해 너무도 원시적인 인디언들의 토템신앙 등 과거 서부극에서 흔히 봤던 백인우월주의의 선악 구도가 깔려있다는 점이다. 덩달아 억척스런 여인으로 변신한 케이트 블란쳇의 연기는 빛을 잃었고, 2시간이 넘는 상영시간은 도식적인 이야기 전개 때문에 지루하다. 특히 인디언으로 등장한 토미 리 존스는 물 위에 뜬 기름처럼 이질감이 느껴진다. 생선요리에서 가시를 발라내듯 내용 뒤에 숨은 메시지를 다각도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는 작품. 15세 관람가. 27일 개봉.
/최연진기자 wolfpa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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