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릴러 '양들의 침묵' 시리즈의 완결편인 리들리 스코트 감독 작품 '한니발'은 그동안 국내에 DVD로 소개될 수 없는 불운한 작품이었다. 식인종 한니발 렉터 박사가 사람의 뇌를 산 채로 요리하는 장면이 영상물 등급위원회(영등위) 심의에 걸려 출시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이변이 일어났다. 문제의 장면이 무삭제로 등급심의를 통과, DVD가 3월25일 햇빛을 본다. 뿐만 아니다. 남녀 주인공의 음모와 성기가 버젓이 드러나는 프랑소와 오종 감독의 '스위밍풀'과 극장 개봉시 신체절단 부분이 삭제됐던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킬빌'도 등급심의를 무삭제로 통과해 극장에서 볼 수 없던 영상을 DVD로 선보인다. 최근 잇따른 영등위의 완화된 등급심의에 대해 DVD 애호가는 물론이고 제작사 모두 환영하는 분위기다. 과연 세간의 기대처럼 심의 기준이 과거와 달라진 것일까. 궁금증을 풀기 위해 DVD 등급심의를 담당하는 이경순(60·사진) 영등위 부위원장 겸 DVD·비디오 심의위원회 의장을 만나봤다.DVD·비디오 심의위는 이 의장을 비롯해 백우영(63) 전 한국일보 문화부장, 윤명아(40) 미디어세상 열린사람들 방송팀장, 김병록(41) 미디어교육센터 소장, 곽영진(44) 영화평론가, 김선엽(42) 국제영화비평가연맹 한국본부 간사, 이정희(40) 시나리오 작가 등 7명의 위원이 맡고 있다. 모두 예술원 원장의 추천을 받아 대통령이 위촉하며 임기는 3년. 1999년 영등위가 발족한 이래 2기 위원들이 활동중이다.
"등급심의는 청소년을 위한 안전띠입니다. 목적이 청소년 보호에 있거든요. 따라서 청소년에게 해로운 지나친 선정성과 폭력성은 걸러낸다는 원칙이지만 시대의 흐름을 도외시할 수는 없죠. 성인을 위한 콘텐츠도 필요한 만큼 요즘은 18세 이용가 등급에 대해서는 시대를 앞서간다는 생각이 들 만큼 관대한 문화 선진국 수준의 심의기준을 적용합니다."
그가 말하는 문화 선진국 수준의 심의기준이란 시대흐름에 따라 동성애, 근친상간 등의 소재 제한이 없으며 단순한 그림보다는 작품성 위주의 평가를 말한다. "과거 공연윤리위원회시절에 비하면 많이 완화된 셈이죠. 그런데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보수적이고 엄격한 곳이라는 오해를 받을 때에는 억울합니다."
요즘 DVD 타이틀이 부쩍 늘면서 업무량이 두 배로 증가했다. "DVD와 비디오의 심의신청물량이 7대 3 정도로 DVD가 늘었어요. 위원 1인당 하루에 2, 3편씩 보며 1주일에 4일을 심의에 매달리죠. 특히 DVD는 부록 등 내용물이 많아 영화, 비디오보다 더 힘들어요."
심의절차도 간단하지 않다. DVD 타이틀 제작 및 수입사에서 원하는 등급 심의를 신청하면 예심위원 4명이 우선 보고 예심의견서를 덧붙여 위원회로 이관, 위원회에서 다시 보고 최종 등급을 부여한다. 내용에 문제가 있으면 모두 모여서 다시 보고 거수로 투표해 등급을 결정한다. "영등위 기본 방침이 열린 심의에요. 국민의 의식수준이 올라간 만큼 반영한다는 거죠. DVD 타이틀 제작사들도 이런 점을 감안해 제작할 필요가 있어요. 특히 부록 영상의 경우 반드시 한글 자막을 넣어야 하는 조치를 완화해 케이스에 '한글 자막이 없다'는 표기를 하면 자막이 없어도 출시할 수 있도록 했어요. 그렇더라도 되도록이면 제작사에서 모든 부록에 한글 자막을 넣어 많은 이용자들이 편하게 볼 수 있도록 해주기를 바랍니다."
/최연진기자 wolfpa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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