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글라데시의 그라민뱅크(Grameen Bank) 같은 '빈민은행'을 세워 신용불량자들을 구제한다."사회적 취약계층에게 저리대출을 해주는 '빈민은행' 개념이 한국경제의 최대 현안인 신용불량자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저금리 대출지원으로 돌파구 찾기
금융감독당국 관계자는 22일 "신용도가 낮은 사람들에 대한 금융회사들의 일방적 대출제한이 신용불량자 양산의 주요 원인"이라며 "신용불량자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선 이들 저신용자에게 필요자금이 제대로 공급될 수 있도록 체제를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밝혔다. 신용불량자 문제는 기본적으로 '돈'의 경색에서 비롯된 만큼 '돈'으로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논리다.
이와 관련, 현재 정부와 금융당국 일각에서 집중 거론되고 있는 방안이 방글라데시의 그라민뱅크와 같은 사회연대은행 개념이다. 1976년 빈민구제 목적으로 설립된 그라민뱅크는 제도권 금융기관으로부터 돈을 빌릴 수 없는 취약계층만을 상대로 영업을 하며 오늘날 '부실발생률 2% 미만'의 우량은행으로 성장했다. 이 은행은 여건이 비슷한 고객들을 한 데 묶어 대출해주는 '연대융자' 방식으로 특히 유명하다. 예컨대 자활의지가 있는 고객 5명이 공동으로 연대융자를 신청하면 상호간의 보증만으로 돈을 빌려주는 식이다. 은행이 별도의 담보나 보증을 요구하지 않지만, 고객들은 한 사람이라도 연체가 생기면 다른 대출자가 불이익을 받기 때문에 도덕적해이에 빠지지 않는다.
'빈민은행'식 해법의 효용성
금융거래가 원천적으로 차단된 국내 신용불량자에게도 비슷한 방식으로 대출지원을 해준다면 신용경색의 해소로 개인신용불량 사태를 상당부분 진정시킬 수 있으리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빈민은행은 신용불량자에게 연체금 상환자금은 물론 새로운 생계자금까지 지원할 수 있어, 기존의 연체자금을 장기대출로 전환하는 대환대출이나 리볼빙과는 실효성면에서도 큰 차이가 있다. 더구나 빚 탕감 등에 따른 도덕적해이 시비에 휘말릴 소지도 적다.
문제는 대출재원의 조성방법. 이와 관련, 금융계 일각에선 '금융기관 역할론'이 거론되고 있다. 신용불량자를 배출한 은행이나 카드사들이 부실의 책임을 지고 대출기금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경우 신용불량자를 위한 '빈민은행'은 은행 등의 출자형태로 설립, 운영되는 형태가 될 수 있다.
정부의 복안과 파장
금융계에서는 이헌재 경제부총리 역시 '빈민은행' 개념을 복안으로 갖고 있을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 부총리는 야인 시절인 올 1월 한 세미나에서 "금융계가 다중채무를 한 곳에 모으는 특별한 기관을 만들어 서서히 채무를 회수하는 방식으로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고 서민생활의 정상화를 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정부가 실제로 '빈민은행' 방식을 해법으로 들고나오더라도 상당한 진통과 마찰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가뜩이나 경기침체가 심각한 상황에서 금융기관의 책임분담을 이끌어내기가 쉽지 않고, 설사 대출기금이 조성된다 하더라도 대출자 선정 및 집행과정의 시행착오는 물론 추가부실에 대한 우려도 상존할 것이기 때문이다.
/변형섭기자 hispe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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