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론조사 결과는 노무현 정부 출범 1년간 한미관계에 대한 국민여론이 신중해지고 보수적 인식이 강화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미군장갑차 여중생사망 사건 이후 반미감정과 한미관계의 재조정을 요구하는 국민의 목소리가 한창 높았던 2002년 12월 여론조사(중앙일보-동아시아문제 연구소)와 이번 결과를 비교하면 변화가 뚜렷하게 나타난다.우선 바람직한 한미관계를 묻는 질문에 '미국탈피 자주외교'를 선호한 응답자는 28.1%에서 19.7%로 줄어들었다. 반면, '한미동맹 강화'를 선호한 응답은 20.4%에서 31.6%로 증가하였다. '중도' 입장을 지지한 사람은 50.5%에서 46.9%로 다소 줄었지만 한미동맹 강화 입장과 합하면 78.5%가 미국과의 관계에서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보수화 추세는 주한미군에 대한 태도에서도 나타난다. 2002년 12월에는 즉각 철수(6.3%), 단계적 철수(44.6%)를 지지하는 입장이 51%에 달했다. 그러나 이번 조사에서는 '계속 주둔해야 한다'(34.3%)와 '상당기간 주둔해야 한다(27.1%)'는 입장이 '단계적 철수(33.1%)'와 '즉각 철수(3.8%)'을 훨씬 상회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북한 핵개발 의혹으로 불거진 안보위기를 반영하는 것이며, 국민이 한미동맹을 위기해소의 기본 해법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라크 추가파병에 대해서도 '적극 찬성(15.4%)'과 '대체로 찬성(44.3%)'을 합하면 59.8%에 달해 '대체로 반대(22.9%)'와 '적극반대(14.4%)'를 능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금까지 이라크 전쟁의 명분에 대해 과반수가 반대하던 추세가 반전돼 추가 파병을 지지하는 여론이 형성된 것은 정부가 내세운 현실적인 '국익론'에 수긍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처럼 표면적으로는 한미동맹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 요인이 완화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조사에서 나타난 국민여론은 대단히 복합적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선 세대별, 이념별 양극화 현상이 여전히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바람직한 한미관계' 를 묻는 문항에서 가장 자주적 외교노선을 0점, 중도 5점, 가장 동맹 강화 입장을 10점이라는 척도로 측정한 결과, 20대는 4.87, 30대 4.88, 40대 5.39, 50대이상의 경우는 6.41로 뚜렷한 세대별 차이를 볼 수 있다. 이념별로도 진보 4.85, 중도 5.21, 보수 6.33으로 한미관계에 대한 뚜렷한 선호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가장 흥미로운 결과는 국민들 대다수가 안보의 지렛대로서 한미동맹에 대한 지지를 보이면서도, '남북통일에 가장 장애가 되는 나라'로 미국을 꼽은 응답자(46.3%)가 북한(25.1%)을 훨씬 능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조지 W부시 정부의 일방주의적 태도가 남북 화해에 장애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된 것이다. 한편 대다수 응답자(57.1%)가 노무현 정부가 취해야 할 대북정책으로 '햇볕정책과 강경정책의 병행해야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48.6%가 부시 정부의 대북정책에 반대하는 등 북한에 대한 이중적 인식을 보이고 있다.
결국 이번 조사는 한반도 안보환경의 변화가 안정희구 심리를 자극, 한미동맹을 안보의 핵심 축으로 인정하는 태도가 증가하고 있는 반면 세대별 및 이념성향별로 서로 다른 인식이 대립하는 양극화 현상도 아직 지속되고 있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대미관계를 둘러싼 우리 내부의 갈등이 앞으로도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 내 영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盧 지지층도 "안정" 지향 선회
한미관계에 대한 국민의식 변화의 흐름은 주요 대미정책에 대한 지지도를 2002년 12월 대선 당시 지지후보별로 살펴보면 더욱 선명해진다.
한국일보와 분석 팀의 조사결과 16대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를 지지했다고 밝힌 응답자들의 절반이상이 주한미군 주둔, 이라크 추가파병 등을 지지했다. 이들 정책의 지지도에 있어서 노 후보 지지자들은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이회창 후보 지지층와 현격한 차이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 같은 결과는 30·40대를 중심으로 노 후보 당선에 기여했던 유권자들의 인식이 현실 및 안정 지향적으로 반전했음을 시사한다. 또한 노무현 정부 대외정책의 '우향우' 추세를 설명하는 열쇠가 되기도 한다.
주한미군 주둔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서 노 후보를 선택했던 응답자들은 '계속 주둔해야 한다' 28.6%, '상당기간 주둔해야 한다' 30% 등 찬성 답변이 58.6%로 반대 40.5% (단계 철수 35.6%, 즉각 철수 4.6%)를 넘어섰다. 이 후보 지지층 출신은 찬성 76.8% 반대 22.6%였다.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 지지자들의 찬성률 20.8%에 비교할 때는 노 후보 지지자들의 보수화가 훨씬 더 두드러져 보인다.
이라크 추가파병에 대해서는 노 후보 지지층 출신의 찬성률이 61.4%(적극 찬성 16.1% 대체로 찬성 45.3%)로 전체평균 59.8% 보다 도리어 높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는 36.6%에 불과했다. 이회창 후보 지지층은 찬성 67.1%, 반대 28.7%였다.
노 후보 지지층은 심지어 '부시 미 정부의 대북강경정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는 질문에 대해서도 찬성비율이 전체 응답자 평균(44.7%)에 가까운 42.9%(지지 10.1%, 대체로 지지 32.1%)로 나타났다. 이는 이회창 후보 지지자의 찬성률 52.2%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것이었다. 부시의 대북강경정책에 반대하는 노후보 지지층은 51%였다.
/정상원기자 ornot@hk.co.kr
■ 盧대통령 대미정책 평가
국민들은 노무현 정부의 대미정책에 대해 다소 불만스럽다는 평가를 내렸다.
먼저 노 정권의 한미관계에 대한 평가에서 응답자의 61.4%가 '별 차이가 없다'는 냉담한 반응을 보인 가운데 '나빠졌다'는 부정적인 의견(24.8%)이 '좋아졌다'는 긍정적(10.7%) 의견을 두배이상 앞질렀다. 이라크 파병 및 외교부 장관 교체 과정에서 불거졌던 자주외교와 동맹외교 논란이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악화의견은 40대(33.1%) 소득 501만원 이상(38.8%) 계층에서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한미관계를 둘러싸고 최근 정부부처 내에서 불거진 갈등에 대해서는 대통령에게 비난의 화살이 돌아갔다. 부처간 갈등의 요인으로 '대통령의 리더십 부족'(27.4%)이 1위로 꼽혔고 '안보정책팀 내의 이념적 노선차이'도 26.9%나 거론되는 등 '대통령 책임론'이 비등했다. 노 대통령의 한미관계 노선에 대해서는 자주외교(0점)와 동맹강화(10점)의 스펙트럼에서 동맹강화에 가까운 평균 5.4점으로 평가했다.
/김정곤기자 kimj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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