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이젠 혼자 설 수 있어요."22일 유럽프로골프(EPGA)투어 칼스버그 말레이시아오픈(총상금 94만8,947유로) 마지막 라운드를 마친 선천성 청각장애 골퍼 이승만(24)의 눈가는 촉촉했다. 전날까지 선두였다가 마지막 날 부진으로 8위로 떨어졌다는 아쉬움 때문이 아니었다. "장애인이라 한가지 재주는 꼭 있어야 한다"고 누누이 강조했던 어머니의 당부를 이제 이루었다고 생각하자 절로 눈물이 맺힌 것이다.
이승만은 이날 말레이시아 콸라품푸르 사우자나골프장(파72 6,971야드)에서 끝난 4라운드 경기서 5오버파 77타로 부진, 합계 7언더파 281타로 공동 8위에 올랐다. 전날 3라운드까지 2타차 선두를 달리던 이승만은 첫 우승에 집착한 탓인지 7번 홀에서 OB를 낸 이후 흔들리며 순위가 하락했다. 우승은 14언더파를 기록한 태국의 통차이 자이디에게 돌아갔다.
우승을 차지하지는 못했지만 심각한 장애를 감안할 때 이승만이 데뷔무대에서 상위권의 성적을 올린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는 라운드 중에도 아버지의 입을 보며 의사소통을 한다. 뜨내기 캐디와의 의사소통은 매우 어렵다. 이런 악조건을 딛고 그는 이번 대회에서 세계적 골퍼로서의 잠재력을 발휘했다. 대회 3라운드까지 줄곧 60대 타수(69―68―67)를 기록하며 선두권을 유지, 세계 정상에 뒤지지 않는 기량을 선보였다. 전문가들은 "이승만이 조만간 세계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나게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올해 1월 아시아프로골프투어(APGA) 2004년 퀄리파잉스쿨에서 합격해 APGA를 겸한 EPGA에 첫 출전한 이승만은 이번 대회에서 콜린 몽고메리(스코틀랜드), 파드리그 해링턴, 폴 맥긴리(이상 아일랜드) 등 쟁쟁한 골퍼들을 제치고 리더보드에 이름을 올렸다.
현재 세계프로골프 무대에 장애인은 극히 드물다. 2001년 법정투쟁 끝에 '골프카트를 타고 대회에 출전할 수 있다'는 판결을 끌어낸 장애인 골퍼 케이시 마틴(31·미국)이 있으나 PGA 본선 벽은 넘지 못했다.
이승만은 1990년부터 97년까지 국내 주니어대회에서 14승을 올렸고 천안북일고 시절인 98년 한국아마추어선수권에서 우승했다. 183㎝의 큰 키에서 뿜어내는 드라이버 샷은 300야드를 넘나든다. 최장거리는 363야드. 96년말 삼성 주니어골프 육성 프로그램을 통해 미국 레드베터 골프스쿨에서 6주간 교육을 받을 당시 레드베터는 "3년 내에 PGA에서 우승시키겠다"며 미국행을 권했다. 99년 미국행 비행기에 오른 그는 그러나 돈이 없어 레드베터 골프스쿨 입교를 포기하고 홀로 훈련했다. 이승만은 이후 PGA투어 진출 문턱에서 번번히 좌절하다 이번 대회에서 피땀어린 결실을 수확했다.
그가 골프에 입문한 동기는 장애와 관련이 있었다. 아버지 이강근(55)씨는 8살이 된 그에게 골프채를 사줬다. 친구들의 말이 들리지 않아 혼자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던 그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기 위한 것이었다. 그는 하루 2,000개씩 볼을 치며 골프에 빠져들었다. 발톱 열 개가 썩어서 빠질 정도로 독한 훈련을 거쳤다. 하지만 "부모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강하게 살아 남으라고, 뭔가 한가지 재주는 꼭 갖고 있어야 한다고, 아들을 감싸주지 않았다"는 것이 어머니 박숙희(50)씨의 눈물어린 회고다.
/조재우기자 josus62@hk.co.kr
● 이승만 프로필
출생년도 1980년
신장 183㎝
몸무게 82㎏
출신학교 논현초등-구정중-천안북일고
드라이버 비거리 평균 295야드
1999년 5월 미국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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