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고(最古), 한·중·일을 통틀어 최대 규모인 높이 14.24m 기단 길이 10.4m인 익산미륵사지석탑(국보 제11호). 1,400년 세월의 풍상을 인내해 온 익산미륵사지석탑은 사면을 에워싼 거대한 가건물에 둘러싸여 있었다.익산미륵사지석탑의 1,400년 역사를 되돌리는 전면 해체·보수가 진행되고 있는 현장을 20일 둘러봤다. 석탑은 2001년 11월 공사가 시작된 후 2년 3개월여 만에 6층부터 2층까지가 해체돼 있었다.
미륵사지석탑은 본래 9층으로 추정되지만, 17세기에 무너져내려 6층까지만 남아있었다. 그나마 1915년 일제가 보존을 명목으로 콘크리트 옹벽을 흉측하게 덧씌운, 기형적인 모습을 유지해오다 98년 구조안전진단 결과 해체 수리키로 결정됐다. 현재 1층 옥개(지붕)석 위로 모습을 드러낸 2층 심주석도 석탑이 서쪽으로 기울어있는 그대로다.
해체 공사 후 지금까지 벗겨낸, 일제가 덧씌운 콘크리트만 150톤에 달한다. 들어낸 석재 하나하나의 위치와 크기, 형태를 실측해 기록한 도면과 사진은 각각 2만장.
평균 1.5톤의 돌덩이 2,000개를 하나하나 들어내는 일은 만만찮은 일이다. 자동크레인을 쓸 수밖에 없지만 드잡이 기능보유자 홍정수(64)씨가 일일이 석재의 무게중심을 잡아 제자리에서 들어내고 바닥에 내려놓는다.
치석 제거용 드릴로 석재에 붙어있는 콘크리트를 세심하게 떼내는 작업을 하는 석공들이나 보존처리 연구원들도 피가 마른다. 해체 뒤 석탑이 다시 모습을 갖출 때를 대비해 3차원 스캐너를 이용, 석재들의 원래 위치도 일일이 기록하고 있다.
올해 1층 기단부를 해체하고 나면 미륵사지 석탑의 모습은 일단 사라진다. 100억원의 예산을 들여 당초 2007년까지 복원을 마무리할 계획이었지만 워낙 대공사인데다 부재 하나하나를 손대는 데도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보니 완공이 1년 정도 늦춰질 전망이다.
다시 태어날 미륵사지석탑을 어떤 모습으로 복원할 것인가에 대해 전문가들은 아직 확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그 가능성은 두 가지다. 국립문화재연구소 김봉건 소장은 "완전 해체 뒤 복원 수위를 결정할 방침"이라며 "현존 상태였던 6층까지 복원할 수도, 1,400년 전 원래 모습인 9층으로 복원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9층까지 복원하려는 계획에 대해서는 미륵사지석탑을 왜곡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해체 과정에서 미륵사지석탑을 둘러싼 의문도 하나둘 풀리고 있다. 석탑 부재를 분석한 결과 석재는 인근 미륵산에서 가져온 화강암으로 확인됐다. 또 문헌에 남아있는 후백제 시대의 개축 기록 등 개·보수 및 붕괴 흔적도 확인되고 있다. 원래 탑을 쌓은 석재와 두께를 다르게 가공한 것들이 해체 과정에서 발견된 것이다.
지난해 2층 옥개 받침석 해체 시에는 백제 무왕(600∼640년) 대에 세워진 석탑의 중심인 심주석 가까이에서 통일신라시대 것으로 보이는 소호 조각이 발견돼, 개·보수 기록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현장책임자인 문화재연구소 김덕문 연구원은 "소호 조각은 석탑 내부를 잔돌로 메우면서 그 사이에 진흙을 다져넣는 과정에서 묻힌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고려시대 기와조각이 상당수 발견되고 조선시대 상평통보도 나오는 등 여러 시대의 유물이 한꺼번에 발견되고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 이들 유물은 대부분 일제가 덧바른 콘크리트 내에서 발견돼 미륵사지석탑이 던지고 있는 본격적 의문의 규명에는 여전히 미흡하다고 문화재연구소는 보고 있다.
/익산=문향란기자 iam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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