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중년층이라면 아주 어렸을 때에 이 세상 모든 것에 서열을 매겨야 직성이 풀렸던 경험을 누구나 다 갖고 있을 것이다. 그게 딱지놀이의 영향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늘 어른들에게 '누가 더 높아요?''누가 이겨요?'라는 질문을 던지곤 했을 것이다.의사와 변호사 중 누가 더 높아요? 육군 대위와 선생님 중 누가 더 높은가요? 태권도 3단과 유도 3단이 붙으면 누가 이기지요? 호랑이와 사자가 싸우면요?
어린 아이였기에 그런 바보 같은 질문을 던지고서도 혼이 나지 않는 특권을 누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최근 공격적인 보수 옹호론을 내놓는 일부 논객들은 자식을 키워 손자를 볼 나이가 되어서도 여전히 그런 '계급 놀이'를 즐기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걸 '서열집착증'이라고 해야 하나?
물론 그들의 서열 매기기는 어린 아이들의 그것처럼 유치하진 않다. 그러나 이들이 매사를 성패(成敗)와 우열(優劣)의 관점에서 보고 있는 건 분명하다. 평가의 잣대도 단순하다. 이들은 인생에서의 성패와 우열을 권력과 금력의 크기로 평가하면서 '3류''하류''열등감''콤플렉스''한풀이'따위의 단어들을 즐겨 쓴다. 기성 체제에 저항하거나 사회변화를 외치는 사람들이 바로 그런 자질이나 동기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전혀 일리가 없다고 보기는 어렵다. 문제는 '1류'와 '상류'를 자처하는 이들이 '다름'이나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모든 걸 일렬 종대로 줄 세우기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너와 나는 다르다." 그런 식으로 자신을 옹호하면 안되는 걸까? "너는 열등하기 때문에 시기와 질투심에서 나를 비판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말해버리면, 같은 이치로 '천박과 파렴치'라는 딱지가 자신에게 부메랑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게 아닐까?
리영희의 '역정'을 보면 해방 정국의 '아사리판'에서 자신의 진로를 놓고 처절하게 고민하는 대목이 나온다. 입신영달의 길로 갈 것인가? 그는 가족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그 길로 가지 않았다. 그 길로 가서 세속적인 성공을 한 사람이 그 길로 가지 않아 세속적인 성공과는 멀어진 사람에게 인생에 있어서의 성패와 우열을 말하면서 조롱하는 게 온당한가?
일부 '상류' 보수 논객은 그런 조롱을 즐기는 것 같다. 그 조롱은 친일파와 친(親)독재세력이 독립운동가와 민주화운동가는 물론 그들의 후예를 향해서도 퍼부었던 것이다. 무슨 운동까지는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1970, 80년대의 상황에서 기성 체제를 수긍하거나 예찬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기성 체제를 수긍하거나 예찬한 사람들이 세속적 성공에 있어서 훨씬 더 유리했다는 걸 누가 부정할 것인가.
그렇게 기성 체제와 타협해서 얻은 성공과 성취를 순전히 자신의 자질과 능력 덕으로 돌리면서 다른 길을 걸었거나 걷고자 하는 사람들을 조롱하는 건 너무 뻔뻔한 게 아닐까? 진정 이 사회를 아끼는 마음에서 '보수'를 하고자 한다면, 양 극단을 배격하면서 상호 공감대를 넓혀 나가기 위해 애쓰는 게 좋을 것이다.
나와 견해가 다른 사람들에 대해 일단 '다르다'고 인정하는 자세를 갖자. 서열을 매기면서 정신분석학적 진단을 내놓는 과잉 서비스는 극단적인 앙갚음에 지나지 않으며 또 다른 극단주의를 불러올 뿐이다.
/전북대 신방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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