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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무대 조명뒤 "잿빛 인생"들 떠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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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무대 조명뒤 "잿빛 인생"들 떠돈다

입력
2004.0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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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4인조 여성 댄스그룹의 멤버로 활약했던 J(28)씨. 대학 시절 그룹을 결성해 기획사에 발탁된 뒤 TV에 출연하면서 그토록 고대했던 스타의 꿈이 이뤄지는 줄 알았다. 그러나 모든 것이 백일몽이었다. 3개월쯤 지났을까. 데뷔곡의 인기가 시들해지면서 TV 출연 요청이 뜸해졌고 무대에 오르는 횟수도 줄었다. 기획사측에서는 팀 해체를 요구했다. "끝까지 하겠다"고 버텨봤지만 불러주는 곳이 없었다. "학교생활을 2년여 동안이나 포기하다시피 하면서 음악에 매달렸는데 더 이상 가수를 못한다고 하니까 눈앞이 캄캄했어요. 술로 시간을 보내다 다른 길을 찾아봤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지난 세월이 허망할 뿐입니다." 현재 그는 동두천 가구공장에서 가구 제작기술을 배우고 있다.4년 전 한 댄스그룹에서 활동했던 L(23·여)씨는 최근 연예계를 포기하고 나레이터 모델을 시작했다. 잠깐의 영화(榮華) 뒤에 남는 것은 의상비 조로 받은 선수금에 대한 기획사의 빚 독촉 뿐이었다. L씨는 "극소수 톱스타를 빼고는 모두 실패자로 내몰릴 수밖에 없는 연예계의 현실을 뒤늦게 안 것이 후회된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일거리가 없는 날에는 나이트클럽 접대부로 취객들을 맞고 있다.

가수 배우 탤런트 댄서 등을 지망하는 청소년들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지만 이런 연예인 열풍의 이면에는 좌절과 방황이 자리하고 있다. 연예계에 입문은 했지만 얼마 후 용도 폐기된 이른바 '잠깐 스타'들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채 거리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J씨나 L씨는 그나마 일찍 연예계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다른 직업을 찾아 나서 밥벌이라도 하고 있지만 미련 때문에 쉽게 전직하지 못하고 연예판을 전전하다 결국 30대 중반에 들어서야 일자리를 찾아 나서는 경우도 허다하다. 하지만 이미 취업적령기가 지난데다 기술도 없으니 십중팔구 실업자다.

기획사들에 따르면 연예계 산업이 급성장한 90년대 이후 노래 한두곡 발표하고 사라진 가수나, 6개월 이하의 단역 활동을 하다 퇴출된 탤런트 배우 등이 줄잡아 5,000∼1만명에 이른다. A기획사 관계자는 "가수의 수명이 너무 짧아져 몇곡이 히트를 친다 해도 후속곡이 인기를 얻지 못하면 기획사는 다른 신인에게 눈을 돌린다"며 "특히 유형이 자꾸 바뀌는 댄스가수들은 금방 노인 취급을 받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들 중 상당수가 가능성 없는 재기의 꿈만 갖고 연예계 주변에서 방황하다가 실업자로 전락한다"고 털어놓았다.

사실상의 실업자 생활이 어느덧 10년인 전직 가수 K(38)씨는 사업에 손을 댔다가 경험부족으로 실패한 뒤 아예 집에 들어앉았다. K씨는 "공부할 시기에 노래 부르고 직업을 가져야 할 시기에는 댄스에 열중했는데 일반 직장에서 뽑아주겠는가"라며 "연예인 시절 자유분방한 생활 때문에 오전 9시∼오후 6시 규칙적인 회사생활도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90년대 인기 남성댄스그룹의 멤버 S(26)씨는 "음반을 내고 2개월 안에 사라지는 댄스가수들이 전체의 90% 이상이고 이들 대부분은 유흥업 종사자로 내몰린다"며 "나 자신도 일반 기업체에는 취직이 안돼 포장마차를 차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STC 엔터테인먼트의 안호상 실장은 "겉으로는 화려한 무대이지만 언제나 조기퇴출될 수 있는 것이 연예계"라며 "지망생들은 연예계의 어두운 그림자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서울예대 연극과 김효경 교수는 "연예계 진출에 모든 것을 건 채 학업과 취업준비를 게을리하다가는 자칫 평생을 사회 부적응자로 남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준택기자 nagne@hk.co.kr

홍석우기자 muse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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