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전 대통령 비자금 수사가 이번에는 결실을 거둘 듯 하다. 검찰은 아들 재용 씨에게서 167억원을 찾아낸 데 이어, 측근들이 관리하던 100억원가량을 더 발견했다고 한다. 전씨는 19일 검찰의 방문조사에서 비자금은 96년까지 모두 쓰고 남은 게 없다고 주장했지만, 드러난 돈만큼은 내놓게 됐다.검찰이 1,600억원이 넘는다는 전씨 비자금을 끈기 있게 추적, 일부나마 환수하는 것은 전씨의 부도덕, 몰염치에 분개하고 상처받은 국민 정서를 위무하는 데 도움될 것이다. 그가 권력을 놓은 지 20년 가까이 지났지만, 뒤늦게라도 정의를 실현해 본보기로 삼는 뜻도 크다. 재산환수를 촉구하는 여론이 잦아들지 않는 것도 개인에 대한 미움보다 불행한 과거를 청산해야 한다는 대의가 바탕일 것이다.
그러나 전씨 비자금을 둘러싼 우여곡절은 여전히 아쉬운 대목이 많다. 우선 전씨 자신이 집권 경위야 어쨌든 전직 국가 원수답게 허물을 웬만큼 털어놓고 선처를 구하는 양심과 명예심은커녕, 단돈 몇 십만원밖에 없다고 강변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국민의 분노를 자극한다. 본인은 옥고까지 치른 마당에 죄스러울 게 없다고 여길지 모르나, 여론의 비난과 사법적 추궁을 언제까지 그대로 감당하려는 것인지 딱하다.
다른 한편 역대 권력과 검찰의 정략적, 편의적 대응이 우리 사회를 과거의 질곡에 부당하게 오래 묶어 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문민정부는 전씨의 원죄를 처벌했지만 비자금은 매듭짓지 않았고, 국민의 정부는 한층 소극적이었다. 그렇게 흐른 세월만 10년이 넘는 지금 검찰이 의지를 보이는 것은 좋지만, 이번에도 대단찮은 결과에 그친다면 국민의 상처만 덧나게 한 책임이 논란 될 것이다. 이번에야 말로 철저한 수사를 통한 국고환수로 이 땅에 정의가 살아 있음을 실증해 보일 차례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