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윤주 등 엮음 뿌리깊은나무 발행
요즘은 출판계도 자본의 고속도로를 타고 무섭게 질주한다. 경쟁과 탐욕의 소비 문명이 예쁘게 화장하고, 화려한 출판의 옷을 입고, 책방에서 독자를 유혹한다. 출판은 문화의 전사다. 문화는 생명과 전통의 시간이 넘치는 마당이다. 자본의 시간에 맞서는 자리에 문화의 꽃으로서의 출판이 자리 매김한다.
혼돈의 시대다. 전쟁과 폭력이 평화와 정의를 짓밟고, 파괴와 공해가 자연과 생명을 목 조르는 죽임의 시대다. 출판은 죽임에 맞서 정신을 바로 세우고, 의식을 일깨우고, 문화를 꽃 피게 하는 맑은 샘물이 돼야 한다.
여기 암흑의 시대에 한줄기 빛이 되고, 이정표가 되었던 책이 있다. 병든 세상에 새싹이 돋게 하는 봄날처럼 푸근한 책이 있다. 바로 뿌리깊은나무 출판사에서 펴낸 '뿌리깊은나무 민중자서전' 20권이다. 지금은 헌책방에서나 드물게 볼 수 있는 책이다. '뿌리깊은나무 민중자서전' 20권은 우리나라 출판 역사에서 '오래된 미래'다. 뿌리깊은나무는 출판쟁이들이 뒷골목 술자리에서 신화처럼 이야기하는 출판사다. 책은 절판되고 출판사는 문을 닫았지만, 출판의 금자탑을 세웠던 뿌리깊은나무의 전설은 이어진다. 이 책은 뿌리깊은나무 출판사의 혼이 박힌 책이다. 민중의 숨결이 살아 숨쉬는 책이다. 민중이 스스로의 삶을, 스스로의 말로, 스스로 드러낸, 맨 처음 책이다.
우리말과 글의 주권이 영어, 일본어, 중국어에 오염되어 넋을 잃어가고 있다. 말을 잃으면 겨레도 잃는다. 말을 뺏기면 문화도 없다. '민중자서전'은 우리말의 '말광'이다. 우리말의 바른 쓰임새가 풀뿌리 민중의 생생한 입말로 낱낱이 적혀있다.
출판 일꾼들은 우리말과 글을 바로 세우는 앞자리에 있다. '민중자서전'은 출판 일꾼들에게 성스런 책이다. 늘 옆에 끼고 살 일이다. 열 몇 해 전 '민중자서전'을 보고, '이런 책 한번 만들어 보자'고 출판계에 들어왔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부끄럽다.
/정낙묵·보리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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